이사야서 강해

이사야 45:1-8(하나님은 누구신가)

오비도제일장로교회 2020. 5. 6. 03:28

하나님은 누구신가

(이사야 45:1-8)


오늘 새벽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에 대해서 말씀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이사야 45장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더 깊이 깨닫게 되고 알게 됨으로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의 기도에 큰 은혜와 능력을 체험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예레미야 923절과 24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23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 지혜를 자랑치 말라 용사는 그 용맹을 자랑치 말라 부자는 그 부함을 자랑치 말라

24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찌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땅에 행하는 자인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방금 읽어 드린 말씀은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우리 인생으로부터 무엇을 기뻐하시지에 대해 말씀하고 있는 성경구절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서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예레미야 923절과 24절 말씀은 2가지를 통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우리가 자랑하지 않는 것을 기뻐하신다라는 것입니다. 23절에서 지혜로운 자는 자신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지혜의 근본이 누구이시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까?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가진 지혜도 사실 알고 보면 내 능력이라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능력입니다.

 

그리고 용사는 자신의 힘을 자랑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용사의 힘도 주님이 주신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부자는 그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신명기 8장에 보닌까 우리가 얻은 물질도 내 능력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물질 얻을 능력을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부를 얻게 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 인생으로 하여금 자랑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자신을 자랑하지 않는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알고 보면 우리의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오직 모든 영광 하나님께만 돌리시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두번째,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에게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가? ‘하나님을 아는 것과 깨닫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예레미야 924절에서 말합니다.

 

24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찌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땅에 행하는 자인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자랑하는 자는 무엇을 자랑하라고 하십니까? ‘곧 명철하여 하나님을 아는 것과, 하나님께서는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이 땅 가운데 행하시는 분이심을 깨닫는 것이것을 자랑하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일, 즉 인간들이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깨닫게 되는 것을 기뻐한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매일 나와서 기도하는 것을 기뻐하신다고 말씀하십니까? 우리가 매일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을 기뻐하신다고 하십니까? 우리가 드리는 헌금을 기뻐하신다고 하십니까? 물론, 이 모든 것을 기뻐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기도와 예배와 헌금을 받으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한 채 드려지는 기도, 예배, 헌금, 과연 하나님께 기쁨이 될 것 같습니까?

 

오늘 날 교회 안에 이상하게 여겨야 하지만 이상하게 느끼지 못하는 현상이 하나 있습니다. 언제부턴가 신자들이 하나님에 대해 알고자 노력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가만히 한 번 돌아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이번 한 주 얼마나 하나님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알려고 노력 했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날 교회 안의 심각한 문제는 교회를 다니고 있으면서도 정작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진짜 알고 있어야 하는 것들을 알지는 못한 채 비본질적인 것에 사로 잡혀 실상은 그렇지 못하면서 믿음생활 잘 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오늘 날 사탄과 마귀들이 교회를 무너뜨리기 위해 쓰는 전략과 전술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방법으로 교회의 본질을 망각하게 하는 전략과 전술을 쓰고 있습니다. 사탄과 마귀는 지금도 교회가 교회되지 못하게 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성도들이 깨닫지 못합니다. 어느 정도 심각하게 영적 마귀들이 도전을 하고 있냐면,  

 

사탄과 마귀들이 우리로 하여금 교회의 본질을 망각하게 하기 위해 제일 먼저 하나님이 누구신지에 대한 관심을 가지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설사 신자들이 어떻게 어떻게 해서 하나님을 알게 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을 바로 알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왜곡되게 알게 만듭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복만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복만 추구하는 믿음생활하는 것이 맞다고 신자들로 하여금 유혹하고 편향적인 믿음으로 부추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날 신자들이 고난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고난이 오면 이겨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절망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탄과 마귀는 하나님을 왜곡되게 알려 주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교회를 다니면서 오랜 시간을 교회에서 보냈지만, 정작 하나님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느냐라는 물음에 분명하게 답을 할 수 있습니까? 문제는 하나님을 잘 모르니, 죄가 무엇인지 모를 수밖에 없습니다. 또 죄에 대해서 잘 모르니 우리에게 회개가 왜 필요한지,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닫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사탄과 마귀는 이렇게 신자들로 하여금 조금씩 조금씩 망해 가게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빠져 나와야 합니다.

 

교회 생활의 시작과 끝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시작해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끝난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목회자이자 기독교 영성가가 있습니다. 유진 피터슨이라는 목사님이십니다. 이 목사님께서 우리가 가진 성경을 현대인들의 언어와 생활면로 재해석하여 쓴 성경이 있습니다. ‘The Message’라는 성경입니다. 이 성경, 창세기 서문에 보면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삶의 주제이다. 하나님은 우리 삶에 기초가 된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을 우위에 두지 못한다면 우리는 결코 올바른 선택을 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 삶의 옳은 것을 얻지 못할 것이고, 옳은 생명을 얻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은 여백의 하나님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선택적이지 않다. 하나님은 주말만 찾는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모든 영역에, 중심에서부터 가장자리까지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처음과 마지막이 되신다.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시다.”

 

바로 교회의 본질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충만해야 하는 것입니다. 믿으시면 아멘!

오늘날 교회 안에서 가장 시급히 회복되어야 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라는 말 자체가 사실은 말이 안 된다고 제가 몇 번의 설교를 통해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유한한 인간이 무한한 신, 즉 하나님을 안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기 때문입니다. 죄인된 우리는 죽었다 깨어나도 하나님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여러 곳에서 끊임없이 하나님을 알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을 알아야 우리가 교회를 왜 다녀야 하는지, 우리의 믿음이 정상적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우리교회가 바로 가고 있는지, 우리 인생의 목표가 제대로 되어 있는지 등등 알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3장에 가면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재미난 것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설득하십니다. 왜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 낼 사역을 맡기시기 위해서 모세를 설득하십니다. 그런데 모세가 거부합니다. 모세가 처음 거부할 때 하나님께 물었던 질문이 무엇입니까?

 

당신이 누구입니까?’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누가 나를 보냈냐고 묻는다면 내가 누구라고 말해 줘야 합니까라고 질문한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처음으로 하나님 자신이 누구신지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출애굽기 3장 이전까지는 그 어떤 부분에서도 하나님이 자신이 누구신지 직접 말씀하시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모세에게 비로소 하나님 자신이 누구신지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일이라는 것도 그 일을 시키시는 분이 누군지를 알아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서 혹시 어떤 일을 해 달라고 부탁을 받았는 데 그 일이 누가 부탁한 것인지 알지 않고 무턱대고 일하는 분들이 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교회사역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사역을 할 때, 그 사역을 맡기신 하나님에 대한 이해와 앎이 없이 사역을 하면 힘이 듭니다. 어렵습니다. 그래서 조금만 어렵고 시험에 드는 일이 생기면 주저앉게 되는 것입니다. 조금만 사람들이 알아 주지 않으면 서운해 지는 것입니다. 조그만 것에도 내 자신이 들어나야만 일을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일을 맡기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우리에게 어떤 상급을 주시는 분이신지를 모르니까, 사람에게 평가받고 싶고 사람에게 위로받고 싶고 사람에게 칭찬받으려 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대한 이해와 앎이 없이 교회에서 직분을 받아 일하다 보니 하나님의 방식과 방법이 아니라 세상 비지니스적인 마인드로 교회의 사역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방식이 아닌 비지니스적 생각으로 일하다 보니, 서로 의견이 안 맞으면 언성부터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이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거듭남도 없습니다. 분명히 말씀을 드립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영생은 절대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습니다. 믿으시면 아멘!

 

요한복음 173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따라 읽겠습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영생은 참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알아야 삽니다.

 

교회는 세상 사람들에게 다른 것은 몰라도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게 해 주어야 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려 주고 있는 교회입니까? 오히려 교회에 와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헷깔리게 만들고 있지는 않습니까?

 

세상 사람들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데, 오히려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신자라고 하는 우리가 오히려 하나님을 더 쉽게 생각하고 망각하고 있지 않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을 알지 못해서 그런 것입니다. 정말 우리가 하나님을 잘 알고 있다면 지금 이곳 저곳에 일어나는 작은 소음들이 생길 수 없겠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잘 알지 모르니까 조금만 내 맘에 안 맞으면 불평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 뜻과 생각에 안 들면 상대방을 정죄하고 욕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사야 457절은 하나님이 하나님 자신에 대해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이사야 457절입니다.

 

나는 빛도 만들고 어둠도 창조하며, 평안도 주고 재앙도 일으킨다. 나 주가 이 모든 일을 한다."

 

이사야 457절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에 대해 2가지로 말합니다.

 

첫째, ‘하나님은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시다라는 것입니다. 다시 7절의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나는 빛도 만들고 어둠도 창조하며, 평안도 주고 재앙도 일으킨다. 나 주가 이 모든 일을 한다."

 

뭐라고 하십니까? 하나님은 빛을 만드셨다고 하십니다. 빛이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그 빛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다고 말씀합니다. 또한 그 다음 부분에서 평안도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것들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나님은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나님은 우리에게 빛과 같이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시고 평안도 함께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 험한 세상 우리 인생이 살아 가는 동안, 주님의 평안으로 살게 하십니다. 물론, 우리 인생이 늘 곧은 길만 있을 수 없습니다. 때로는 굴곡진 곳도 있고, 때로는 생각지도 않은 흙탕물에 빠질 때도 있고, 때로는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가시밭 같은 길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길을 걸어갈 때 그냥 가게 하시면 그 길을 끝까지 걸어갈 수 없습니다. 가다가 넘어집니다. 가다가 망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어려움 속에서 끝까지 갈 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님께서 우리에게 평안을 주시기 때문에 험한 인생길 가는 동안 포기하지 않고 한 발 한 발 내딛으며 끝까지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우리에게 빛도 만들어 주시고, 평안을 주시는 것까지는 이해가 되는데, 그 반대인 어둠도 창조하시고 재앙도 일으키신다고 7절 말씀은 말합니다. 7절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나는 빛도 만들고 어둠도 창조하며, 평안도 주고 재앙도 일으킨다. 나 주가 이 모든 일을 한다."

 

여러분, 이게 이해가 됩니까? 하나님께서 어둠도 창조하시고, 우리에게 재앙, 즉 고난도 일으키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니까 어둠도 창조하실 수 있고, 욥기의 말씀처럼 당연히 우리 인생이 고난도 당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진짜 삶에 어둠과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재앙과 같은 고난이 올 때, 여러분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찬양하십니까? 제일 먼저 우리 입에서 나오는 말이 이런 말이 아닙니까? “Why Me?” “왜 제게 이러는 것입니까?”

 

나에게 좋은 일이 일어날 때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는 것 같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고 하지만, 좋지 못한 일이 생기면 원망하고 포기하고 주저앉고 심지어 교회를 떠나버리려 하지 않습니까?

 

왜 신자들이 고난을 만나거나 어려운 일을 당하게 되면 당황해 하거나 믿음을 포기하게 되는 일이 생기는 것입니까? 지금까지 교회에서 하나님에 대해서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았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오늘 이 시간 왜 하나님은 우리 인생에게 고난을 주십니까에 대한 답을 알아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에게 고난을 주시는 이유는 2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을 더 깊이 알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시편 11971절에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고 합니다. 이게 말이 되는 소리입니까? 고난당한 것이 유익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고난을 당하면 어려워하고 힘들어하고 좌절하고 낙망하고 심지어 자신의 목숨까지도 포기하는 일이 생기게 됩니다.

 

하지만 믿는 성도들은 고난을 보는 시각이 다릅니다. 고난을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고난이 내게 유익이라고 합니다. 히브리서 11장에서 이 땅에 살았던 믿음의 사람들의 이름을 나열하면서 마지막 부분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성도들에게 주어지는 재앙을 통해, 성도들을 믿음의 사람으로 굳건하게 세워 가시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54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에게 고난을 주시는 이유 두번째, 고난을 통해 진짜를 가려내시고자 한다라는 것입니다. 교회생활을 할 때 좋을 때는 다 좋습니다. 그리고 좋을 때는 사실 내가 진짜 신자인지 가짜인지 잘 구별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언제 진짜와 가짜가 구별되는지 아십니까?

 

세계 제2차대전 당시 독일에 의해서 1세기 고문서들이 많이 발견되었습니다. 그 문서들 가운데 1세기 로마법정 문서가 발견되면서 많은 관심을 받게 된 것이 있었습니다.

 

어떤 문서였냐면 1세기 당시 로마당국이 기독교인들을 처형하는 과정에서 문서를 기록하던 기록관들이 남긴 법정 재판관들의 대화내용이 적힌 글이었습니다. 그 대화내용에 이런 것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한 재판관이 말합니다. “어제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이들을 심한 고문과 매질로 예수를 부인하게 해 보았소. 그런데 놀랍게도 그 가운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수를 부인하고 자신들이 믿는 신앙의 대상을 부정하더이다. 그러고 보니 그들은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이 아닌 것 같소.”

 

여러분! 우리가 평안하고 잘 될 때는 내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우리 자신도 잘 모릅니다. 하지만 내게 어려움이 닥쳐오면 바로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무엇을 말입니까? 우리의 믿음의 현 주소를 말입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에게 형통을 주셔서 살게 하시지만, 고난과 재앙이라는 도구를 통해 우리의 믿음을 순금같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 고난과 재앙을 대하는 우리 모습을 통해 우리가 진정으로 거듭난 자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말씀의 결론을 맺겠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을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또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시기도 하지만, 때로는 우리에게 어둠도, 재앙과 같은 고난도 허락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난을 당한다고 해서 너무 놀라거나 두려워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 고난과 어려움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를 더욱 단단하게 빚어 갈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기도하실 때, 형통의 복만을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고난을 통해서도 나를 빚어 가신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지금 우리 가운데 어려움 속에, 생각지도 않은 고난 속에, 끝도 보이지 않는 절망 속에 있는 분들이 계십니까? 지금 우리 앞에 주어진 잠시 잠깐의 어려움은, 고난은, 절망은 우리를 무너뜨리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진짜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인 줄 믿습니다.

 

끝까지 믿음의 경주를 하시기 바랍니다. 기복적인 신앙에 빠지지 않고 하나님의 거룩성을 바라보며 고난도 내겐 유익이라는 믿음 가지고 형통만을 쫓는 반쪽짜리 신앙이 아니라 고난 속에 열매맺는 정금 같은 믿음이 다 되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