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서 강해

이사야 21:11-12(오직 구원하심은 우리 하나님께)

오비도제일장로교회 2020. 5. 6. 02:58

오직 구원하심은 우리 하나님께

(이사야 2111-12절)



우리는 신, 구약성경이 하나님의 변함없는 말씀이며 우리의 신앙과 삶에 정확무오한 유일의 법칙임을 믿습니다. 성경은 개인의 신앙생활뿐 아니라, 교회의 모든 활동에도 유일한 규범이고 규범이어야 함을 믿습니다. 그 어떤 것도 성경을 대체할 수 없습니다. 심지어 교단의 교리와 장정도 성경위에 놓을 수 없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더욱이 오늘날처럼 영적으로 혼란한 시대, 다양한 풍조들이 많은 시대에, 우리는 여전히 성경으로 돌아가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지 묵상해야 하며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모든 뜻을 알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6월과 7월 두 달동안 묵상하게 되는 이사야서는 총 66장으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재미난 것은 우리가 가진 성경이 구약 39권과 신약 27, 66권으로 구성되어 있듯이, 이사야서도 그 내용에 있어 전반부 1장에서 39장까지와 후반부40장에서 66장까지의 내용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전반부 1장에서 39장까지는 남북 이스라엘과 이스라엘 주변국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예언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물론, 중간 중간에 6, 11-12, 25-27, 32, 35장등과 같이 희망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부분도 있지만, 이사야 전반부의 대부분(39장까지)은 하나님의 심판과 경고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에 오늘날 신자들이 이사야서를 읽는데 어려워하거나 꺼리게 되는 부분이 되기도 합니다.

 

더욱이 이사야서가 우리의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내용이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이사야 전반부에서 펼쳐지는 이방 나라들을 우리가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방 나라들을 심판하시겠다고 해도 그 말씀에 대해 흥미나 관심을 가지지 못하는 것이 그 나라들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사야서를 읽으면서도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내용을 그냥 쉽게 지나쳐 버리거나 흘려 잃어 버리는 경우가 허다한 것입니다.  

 

저도 처음 이사야서를 읽을 때 그랬었습니다. 특히 구약의 예언서를 읽으면서 예언서가 주는 예언의 애매모호함과 잘 알지도 못하는 고대근동의 나라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지금 오늘을 사는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라는 생각을 해 왔기 때문에 예언서에 적혀 있는 내용을 그리 심각하게 받아 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저만의 문제이겠습니까? 여러분에게도 묻겠습니다. 여러분은 예언서에 기록된 내용을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 들이고 있습니까? 특히 오늘 우리가 함께 보는 이사야 21장의 내용을 보시면서 심각하게 생각해 보셨습니까?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이사야 21장의 내용이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라면 굳이 종이도 발달되지 않았던 그 고대사회에서, 지금으로부터 약 2800년전에 이방 나라들의 대한 멸망이야기를 굳이 비싼 양피지 종이에다 적으실 필요가 있었겠습니까?

 

우리가 예언서를 읽을 때마다, 이 부분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면서 읽어야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예언서가 주는 정확한 의미와 메세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사야 21장은, 이사야 1장부터해서 20장까지 내용인, 이스라엘과 이방 나라들의 멸망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고 있는 내용입니다.  특히 이사야 13장에서 언급한 바벨론의 멸망을 21장에 와서 다시 한 번 더 선포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또한 이사야 21장에서는 바벨론의 멸망뿐만 아니라, 두마와 아라비아에 대한 경고도 담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 두마에 대한 경고의 말씀을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다시 한번 11절 말씀을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것은 두마를 두고 하신 엄한 경고의 말씀이다. 세일에서 누가 나를 부른다. "파수꾼아, 밤이 얼마나 지났느냐? 파수꾼아, 날이 새려면 얼마나 더 남았느냐?"

 

여기서 두마가 누구입니까? 정확히는 누구라도 단정지을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창세기 25장에 보면 이삭의 이복형이었던 이스마엘의 아들들가운데 여섯 번째 아들의 이름에 두마라는 이름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사야 2111절에 나오는 두마가 이스마엘의 후손일 수도 있고, 또한 이사야 2111절에서 세일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것으로 봐서는 야곱의 형, 에서의 후손들인 에돔일 수 있습니다.

 

여하튼 이 두마가 이스마엘의 후손이든 에서의 후손이든, 11절과 12절의 말씀은 두마를 향한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을 경고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선포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여러분에게 하나 묻겠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언제 임하는 것입니까? 성경은 분명이 말씀하십니다. 출애굽기 3233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하나님은 범죄하는 인간들을 그냥 나 두지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어진 34절 하반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보응할 날에는 그들의 죄를 보응하리라

 

지금 언제 보응한다고 하십니까? 하나님께서 보응하실 날에 보응하시겠다고 말씀합니다. 이 말은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의 심판의 날을 우리가 알 수 있다는 말입니까? 모른다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의 그 때와 그 시를 모릅니다.

 

그렇다보니 우리 인간에게 문제가 하나 발생합니다. 하나님 심판의 때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인간들이 죄를 짓고도 하나님의 심판이 바로 임하지 않으니까 생각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어떤 생각이겠습니까?

 

! 죄를 지어도 별 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는구나라는 생각입니다.  

 

여러분! 정말 정신 바짝차려야 합니다. 내가 죄를 지었는데도 나에게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해서 안심하면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직까지 하나님께서 그냥 참고 계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죄를 지어도 괜찮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인내에도 한계는 있습니다. 물론 이 말은 신학적으로 말이 안 되는 말이지만, 왜냐하면 하나님의 인자는 끝이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죄인들의 죄를 언제까지나 참고 기다려 주지 않으신다는 것도 우리는 성경을 통해 압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에 반드시 심판하시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내용을 오늘 이사야 212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212절의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나는 끔찍한 계시를 보았다. 배신하는 자가 배신하고 파괴하는 자가 파괴한다! 엘람아, 공격하여라! 메대야, 에워싸거라! "내가 바빌론의 횡포를 그치게 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의 탄식소리를 그치게 하겠다."

 

뭐라고 하십니까? 하나님께서 바빌론의 횡포를 그치게 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의 탄식소리를 그치게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의 진노의 날이 올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곧 이루어질 것이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 언제, 어떻게 일어나는 지에 대한 심각성을 죄인들은 모른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죄로 물든 인간들은 하나님 말씀을 너무 쉽게 무시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창세기 19장에는 소돔성에 살던 롯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롯의 사위들을 기억하십니까? 한 밤중에 두 천사가 나타나서 곧 임할 하나님의 심판을 전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어떻게 생각했습니까? 농담으로 여겼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진짜 하나님의 진노가 임했을 때, 살지 못하고 소돔성과 함께 멸망했던 것입니다. 왜 그런 것입니까? 하나님의 심판은 생각지도 못한 때에 갑자기 밀어 닥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사야 216-9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읽어 드리겠습니다.

 

6 주님께서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가서 파수꾼을 세우고 그가 보는 대로 보고하라고 하여라.

7 기마병과 함께 오는 병거를 보거나, 나귀나 낙타를 탄 사람이 나타나면, 주의하여 살펴보라고 하여라."

8 파수꾼이 외친다. "지휘관님, 제가 온종일 망대 위에 서 있었습니다. 밤새 경계 구역을 계속 지키고 있었습니다."

9 그런데, 갑자기 병거가 몰려오고, 기마병이 무리를 지어 온다. 누가 소리친다. "바빌론이 함락되었다! 바빌론이 함락되었다! 조각한 신상들이 모두 땅에 떨어져서 박살났다!"

 

여러분! 하나님의 심판은 어떻게 임합니까? 갑자기 임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도 피할 수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심판이 이미 시작되면 그 때는 더 문제가 심각해 집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되면 그때는 후회해도 이미 늦습니다.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다 끝나 버립니다.

 

그래서 아직 시간이 있을 때 정신차려야 합니다. 오늘 두마에게 하는 하나님의 경고를 보시기 바랍니다. 11절의 말씀입니다.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이것은 두마를 두고 하신 엄한 경고의 말씀이다. 세일에서 누가 나를 부른다. "파수꾼아, 밤이 얼마나 지났느냐? 파수꾼아, 날이 새려면 얼마나 더 남았느냐?"

 

이게 무슨 뜻입니까? 아직까지는 하나님의 심판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아직까지는 돌이킬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직까지는 회개할 시간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직까지는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회개의 기회가 있을 때 회개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여전히 살아 있을 때, 여전히 우리가 죄를 짓고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이 때 정신차리고 돌아서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지금이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 6장 말씀을 찾아 보겠습니다.

 

(1-2절 말씀 강해)

 

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지금이 은혜받을 만한 때요 구원의 날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언제 은혜받아야 합니까? 지금입니다. 언제 구원받아야 합니까? 지금입니다. 내일이면 늦습니다. 그래서 성경 히브리서 313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

 

지금 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오늘이라는 시간이 지금 우리 주어졌을 때, 매일 피차 권면해서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고 말합니다. 왜요? 죄가 주는 또 하나의 특성이 뭐냐고 하면 우리를 강퍅케 만드는 것입니다.

 

이게 뭡니까?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못하게 마음을 아주 강팍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죄의 성질이 바로 이렇습니다. 우리가 죄를 지을 때 쉽게 회개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이유때문에 그렇습니다. 죄가 우리 마음을 강퍅케 만들어서 쉽게 회개치 못하게 합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 망하는 것입니다. 죽는 것입니다. 지옥행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오늘이라는 시간, 매일같이 믿는 자들끼리 서로 권면하라고 합니다. 뭘 말입니까? 복음으로 우리 자신이 거듭났는지를 매일 확인해 보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한 가지 묻겠습니다. 여러분은 세례를 받으셨습니까? 그렇다면 세례가 무엇입니까?

 

초대교회 시대에서는 세례를 받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였는지 아십니까? 자신의 목숨을 내어 놓는다는 것을 말합니다. 쉽게 말씀을 드려서 오늘 날 이슬람권에서 사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이 되기 위해 기독교 세례를 받겠다고 하는 것은 곧 자신의 생명을 내어 놓아야 하는 것과 같이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도 이과 같았습니다.

 

우리는 초대교회 시대의 박해 아래도 있지 않기 때문에, 또한 지금 이슬람권 안에서 예수를 믿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너무 쉽게 세례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초대교회에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죽음을 각오한다는 의미였습니다. 사도행전 11장을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19절부터 읽어 드리겠습니다.

 

(19-26절 강해)

 

그리고 13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31절 강해)

 

지금 누가 등장하고 있습니까? 다른 사람은 다 눈에 안 들어와도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이라는 사람이 눈에 들어오십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바울이 활동하던 당시 로마제국 시대에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아십니까? 다 버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생명까지도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내어 놓는다는 것을 말합니다. 자신의 명예도, 돈도, 권력도 다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배설물로 여기겠다고 다짐하는 이들이 세례받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이 당시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이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은 그가 목숨을 걸고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각오한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여러분은 세례를 받으셨습니까?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이 되셨습니까?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이라는 증거가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재산을 다 팔아 교회에 받치라는 말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직장을 버리고 모두가 다 선교사로 나가라는 말이 아닙니다. 지금까지의 나의 삶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명확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듭나야 함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거듭나셨습니까? 거듭났다면 우리의 모습은 어떠해야 합니까? 예전의 모습이 아닌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거듭난 신자라고 고백한다면 구원받은 증거가 우리의 삶 속에서 나타나야 합니다. 무엇이 여러분을 구원받은 자로, 거듭난 성도로 증명해 내실 수 있습니까?

 

간단합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자라고 한다면 더 이상 세상의 가치관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말씀대로 살고자 발버둥치는 우리의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다 맞다고 해도 적어도 우리는 성경이 아니라고 하면 아니라고 말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속에 불의, 추악, 탐욕, 악의,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 수군수군, 비방, 능욕, 교만, 자랑, 악의 도모, 무자비한 마음들이 있다면 우리는 아직 거듭난 성도가 아닙니다. 여전히 지옥을 행해 가고 있으면서도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착각하고 교회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일 수 있습니다.

 

말씀의 결론을 맺겠습니다. 지금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이 땅에 심판이 있을 것임을 분명하게 그리고 엄중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헛트로 들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언제, 어떻게 우리에게 일어날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역시도 하나님의 심판을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마치 신랑을 맞을 준비했던 지혜로운 다섯 처녀처럼 주님의 오심을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의 구원은 오직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밖에는 없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착하게 살았다해도, 산다고 해도 구원받지 못합니다. 우리에게 어마어마한 물질이 있다고 해도, 다른 사람들이 다 존경하는 명예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구원은 오직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만 있습니다.

 

믿으시면 아멘

 

오늘이라는 시간이 가기 전에,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이켜야 합니다. 지난 시간, 내 생각과 내 경험이 하나님 말씀보다 우선으로 행동했던 죄들, 마음 속에 품었던 더럽고 추한 죄악들, 음란과 세상 정욕적인 것들, 교회 직분자이면서도 여전히 끊지 못하고 있는 술과 담배의 문제들, 오늘 이 시간 우리 모든 죄를 주님 앞에 다 내려 놓길 바랍니다. 그리고 새롭게 변화되길 간절히 소원하십시다. 우리 주님이 반드시 우리를 고쳐 주시고 회복시켜 주실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