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

마태복음 6:12, 14-15(하나님을 누리는 삶 그 네 번째-용서하는 삶)

오비도제일장로교회 2020. 5. 7. 11:16

하나님을 누리는 삶 그 네번째-서하는 삶

(마태복음 6:12, 14-15)

 

1996년도에 미국 정신과협회에서,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사람에게만 있는 병을 하나 소개했다고 합니다. 그게 뭔 줄 아십니까? 바로 화병이라는 것입니다. 세계에서 유례도 찾아볼 수 없는 희귀한 병이라고 합니다. 이 화병은 세계의료보건기구인 WHO에 등록되어 있기도 합니다. 미국 정신과협회의 발표를 통해, 소개된 이 화병, 도대체 뭐가 원인일까요?

 

세상에는 남을 용서하는 사람도 있고, 남을 용서하지 못하고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친구나 동료, 가족과 다투고 마음에 상처를 입었을 때, 용서를 하면 마음에 평강과 안정을 되찾게 되지만, 용서하지 못하면 분노로 괴로워하거나, 복수를 위해 고민하기도 하고, 용서하지 못한 마음에 한 평생 원수처럼 지내기도 합니다.

 

미국 스탠포드 대학교용서 프로젝트의 설립자이자, ‘용서학교수인 프레드 러스킨 (Pred Ruskin) 박사는 수년 동안 심리학과 의학을 접목시킨 과학적인 연구를 바탕으로 『용서』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사람은 용서할 때 스트레스와 분노가 감소하고,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여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게 된다고 말합니다.

 

유대인의 탈무드에도당신이 남에게 복수하면 그 기쁨은 잠깐이지만, 당신이 남을 용서하면 그 기쁨은 영원하다라고 했습니다. 복수하는 기쁨과 용서하는 기쁨은 질적으로 다릅니다. 먼저 용서하면 손해인 것 같지만, 용서가 큰 기쁨을 주고, 축복이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삶, 그 네번째 이야기로 '용서'에 대한 말씀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용서란 다른 사람의 허물과 잘못을 덮어 주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은 누군가를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워하거나, 현재 여러분의 어려운 상황을 만든 사람이나,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들을 용서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물론, 나에게 힘든 일을 겪게 한 사람을 용서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쉽게 용서했다거나 상처받은 다른 사람에게 쉽게 용서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상처받아 보지 않으면 용서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는 자들은 이 용서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신앙생활하는 가운데, 아니 어쩜 우리 삶 속에서 날마다, 용서하지 않은 마음이 우리를 분노와 짜증, 미움과 질투, 시기와 원망의 족쇠로 우리를 날마다 괴롭혀서 우리의 행복을 빼앗아 가기 때문입니다.

 

즐겁게 신앙생활 할 수 있는 데, 우리를 못하게 합니다. 즐겁게 내 가족들과 이웃들과 함께 살 수 있는데, 행복한 삶을 누리지 못하게 합니다. 한번 더 말씀을 드립니다만, 저와 여러분의 삶, 우리의 삶, 행복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한번밖에 없는 이 땅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소중한 사람을 만나 것입니까? 그런데 이 용서하지 못하는 맘 때문에 우리의 삶을 망치고 있지는 않습니까?

 

목회를 하다보면 간간히, 날카로운 분들을 만나게 됩니다. 목회라는 것이 사람만나는 일이 대부분이다 보니 이런 저런 분들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날카로운 분들이란, 뭔 대화를 해도 공격적인 모습을 많이 가지신 분들을 말합니다. 이런 분들의 공통된 특징이 있습니다. 본인들은 정작 잘 모르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누군가를 많이 미워하고 있거나, 미워했었거나, 누군가에게 받은 상처로 인해 분노하거나, 분노했었거나, 그로 인해 그 미움과 분노를 용서하지 못하고 있는 분들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분들은 남들로부터 상처를 많이 받는 유형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상처가 해결되지 않아서 고스란히, 자기 자신의 마음 속 깊이 남아 버린 것입니다.

 

내 부모가 준 상처입니다. 내 형제 자매가 준 상처입니다. 내 자녀가 준 상처입니다. 내 남편이 준 상처입니다. 내 아내가 준 상처입니다. 여기 계신 분들은 다 상처에 아파하고 계신 분들입니다. 아니라고 부인하고 싶으시겠지만, 우리는 다 상처받은 영혼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알게 모르게 날카로워 진 것입니다.

 

이상하게 유달리 다른 사람들에 비해 어떤 특정한 것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아무렇지 않게 넘어갈 수 있는 것도, 그냥 날카롭게 반응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혹여나 여기 계시는 분들 가운데, 이상하게 특정한 부분에 날카롭게 반응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드시는 분이 계시다면 그 마음에 상처가 있다는 말입니다.

 

이 상처가 화병을 만들게 됩니다. 화병을 다른 말로 울화통이라고도 합니다. 이런 울화통으로 인해 나타나는 현상이 있습니다. 자기보호라는 것입니다. 울화통이 크면 클수록 자기보호능력이 강하게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누군가가 자신에게 조금만 위협적으로 행동해도 과민한 반응을 보입니다. 참질 못합니다. 성질을 부립니다. 언성을 높입니다. 상대방을 죽일 사람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교회 생활을 하다보면 이런 저런 말하기 좋아하시는 분들 있습니다. 남의 칭찬을 말하기 보다, 남의 허물을 없는 것도 만들어 내어서 모였다하면 불평불만을 쏟아내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을 사실 알고 보면 울화통에 빠져 있는 분들입니다. 과거에 받은 상처들 때문에, 용서하지 못하는 분들인 것입니다. 오늘 이런 분들이 여기 계시다면 주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은 저와 여러분의 이 상처받아 아픈 마음을 치료해 주시길 원하십니다. 여러분의 화병을 치료해 주시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분노와 원망으로 옥죄어진 우리를 자유하게 해 주시길 원하십니다. 그 동안 여러분 잘 참으셨습니다. 그 동안 여러분 잘 견뎌내셨습니다. 그 과거의 상처가 많이 아프셨을텐데, 잘 참아 오셨습니다. 근데, 이제 더 이상 힘들게 그 상처를 참아 내지 마시고, 오늘 우리 주님 앞에 다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주님은 우리의 이 힘든 문제를 완전히 해결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우리를 분노와 원망, 미움의 족쇠로 우리를 자유치 못하게 하는 것에서 자유하게 되는 가장 유일한 방법, 우리의 행복한 삶과 행복한 신앙생활로 이끌 수 있는 유일한 방법, 바로 용서입니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용서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오늘 본문 12절을 보시면 특이한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한글 성경번역과 영어 성경 번역이 좀 다릅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And forgive us our debts, as we also have forgiven our debtors.

 

본문에서 ''라는 단어를 한글성경과 영어성경은 각각 다르게 쓰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원래 원문상에는 영어성경의 표현이 더 맞습니다. , 12절의 죄라는 말은 Sin이라는 의미보다 '빚진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영어성경의 표현을 우리말로 번역을 하면, 이렇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빚진 자들의 빚을 탕감한 것 같이 우리의 빚을 탕감해 주시옵고"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근데, 왜 주님은 용서를 이야기하면서 빚진 것을 이야기하는 것일까요?

 

여러분 가운데, 누군가를 때려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남에게 때려서 상처를 입히는 범죄를 상해죄라고 합니다. 이 상해죄의 벌금은 법적으로 정해진 것은 없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상대방의 경제사정에 따라 합의금이 달라지기 때문에 그렇다고 합니다.

 

그래서 통상, 전치 2주면 100만원, 3주면 200만원, 4주면 500만원 정도의 벌금을 물게 된다고 합니다.

 

자 이제부터 심각한 실험을 한 번 해 보겠습니다.

 

여러분이 만약 누군가에서 상처를 받은 적이 있다면, 여러분이 받은 상처를 금액으로 환산해 보겠습니다. 아팠던 기간만큼 환산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마음에 상처를 받았던, 육체적 상처든 상관없습니다. 어째거나 상처로 인해 힘들었던 적이 있었으면 환산해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간을 환산해서 2주면 $1000, 3주면 $2000, 4주면 $5000, 만약 6주 이상이면, $10000, 그 이상 평생 마음에 남는 상처다 싶으시면, 그냥 $1000000(백만불)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럼 여러분은 현재 상대방으로부터 얼마의 채권를 가지고 계시는 것입니까? 여기 계시는 분들 가운데, 부자되실 분 많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근데, 이것 아십니까? 부자일 수록 불행하신 분이십니다. 받을 것이 많다고 해서 좋아하셔서는 안 됩니다. ^^

 

자 그럼! 이제 여러분이 하나님께 빚진 것을 계산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말씀을 드리면, 나는 하나님께 빚진 것이 그렇게 많지 않은데요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마태복음 25 31절을 펴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께 빚진 것이 없어 보이십니까? 여러분께서 다른 사람에게 행하지 못한 것들이 바로 우리 주님께 행하지 않은 것이 되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상처 준 것이 곧 주님께 채무가 됨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이제 한번 계산해 보시기 바랍니다. 방금 전에 계산한 방식으로 다시 환산해 보시기 바랍니다.

 

계산이 되어 지십니까? 되어지신다면 둘 중에 하나입니다. 거짓말장이거나 정신병자이거나..... 왜냐하면 우리는 어째거나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게 되면, 두배의 배상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적어도 X2가 되기 때문입니다. 상대방과 주님.... 말입니다.

 

다시 마태복음 6 12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빚진 자들의 빚을 탕감한 것 같이 우리의 빚을 탕감해 주시옵고

 

여러분! 용서가 왜 중요한 지 아시겠습니까?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우리가 하나님께 진 빚을 다 탕감받을 수 없습니다. 늘 우리는 빚진 자로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빚을 지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삶인지 여러분은 잘 아실 것입니다. 빚에 독촉받으면서 산다는 것, 얼마나 어렵습니까? 근데, 그 채무를 하루 아침에 탕감받으면 어떻게 됩니까? 자유자가 됩니다. 자유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의 빚을 탕감해 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남을 용서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 용서가 나를 지금까지 미움과 원망으로 구속시켰던 것에서 자유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내 입술에서 불평불만이 사라지게 됩니다. 작은 것에도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모여서 남을 비방하는 것이 아니라, 칭찬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옥죄고 있는 미움과 원망, 상처, 사실 알고 보면 그 받은 상처를 다 보상받고 싶은 마음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렇다보니, 자유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늘 사로잡혀 있는 인생인 것입니다. 자유하길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이제 용서하셔야 합니다.

 

풀러신학교의 기독교 윤리학 교수였던 루이스 스메디스 교수는 그의 책, "Forgive and Forget"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To forgive is to set a prisoner free, and discover that the prisoner is you."

 

무슨 말입니까?

 

"용서한다는 것은 포로된 자를 자유롭게 놓아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 포로가 바로 자신이었음을 깨닫는 것이다."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은 죄를 분명히 지적하고, 책망하지만 죄를 지은 그 사람을 끌어안고 관대하게 용서해 주는 사람입니다.

 

그럼 어떻게 용서할 수 있을까요? 이것 역시도 감사와 자원, 그리고 자족하는 마음처럼 의지적으로 용서해야만 합니다.

 

오늘 본문 14절과 15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용서는 그냥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의지적으로 용서를 할 때만이 가능한 것이 용서입니다. 많은 분들이 그냥 포기하는 것을 용서라고 착각하고 계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용서란 포기가 아닙니다. 진정으로 내 의지를 가지고 용서하려고 해야 용서가 되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용서는 쉬운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용서가 쉽지 않음을 아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에게 상처주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다른 사람을 용서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가진 백만불 이상의 돈을 삭감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분이 여기 있으십니까? 말은 쉽습니다.

 

헬라어 원문에 나오는 용서하다라는 단어가 가진 의미 가운데, 이런 의미가 있습니다.

 

"때어내기 위해 고통스러워하다."

 

용서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몸부림쳐야 합니다. 상대방을 용서하기 위해서 발버둥쳐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이런 엄청난 고통을 가지고 남을 용서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 주님께 우리의 죄를, 우리의 빚을 탕감해 달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남을 용서하지도 않으면서 우리가 기도할 때, 내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語不成說)입니다.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남을 용서할 때, 나에게 복이 되는 것입니다.

 

미국의 대표적인 영화사 MGM(Metro Goldwin Mayer)의 설립자 메이어는 어렸을 적에 친구에게 많이 맞았다고 합니다. 그럴 때마다 메이어는 집으로 돌아와서 화를 내며 그 친구를 욕했습니다. 그러자 어머니가 메이어를 산으로 데리고 가서 거기서 친구 욕을 실컷 하라고 했습니다. 메이어는 산을 향해 소리쳤습니다. “, 이 나쁜 놈아. 못된 놈아.” 그런데 이 소리가 메아리가 되어 자신에게 10배의 큰 소리로 되돌아왔습니다. 메이어는 겁이 났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이제 친구를 축복하며, “하나님이 너를 축복하신다고 외쳐보라고 했습니다. 메이어가 그렇게 말하자, 동일하게 메아리가 자신에게 10배의 큰 축복의 말로 되돌아 왔습니다. 그 때 메이어는남을 향해 한 번의 욕을 하면 그것이 10배로 돌아오고, 남을 한 번 축복하면 10배로 축복이 되돌아 온다는 것을 깨닫고 친구를 용서했습니다. 그리고 그 때부터 어떤 사람이든지 비판하지 않고 칭찬하고 축복했습니다. 그 결과 매년 매출 12억 달러(1 2천억 원)의 세계적인 MGM 영화사를 설립하는 성공적인 인생을 살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