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

로마서 12:1-2(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

오비도제일장로교회 2020. 5. 6. 08:24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

(로마서 12:1-2)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영국의 물리학자, 아이작 뉴턴은 1687년 그의 책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라는 책에서 자연을 지배하는 3가지 운동법칙에 관해 발표하였습니다. 그가 발표한 세가지 법칙 중에 제일법칙이 관성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관성의 법칙이란 정지하고 있는 물체는 외부에서 힘을 받지 않는 한 계속 정지하려는 성질을 갖고 있는 반면, 운동(움직)하는 물체는 외부의 힘을 받지 않는 한 계속 움직이려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법칙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이것이 단지 자연과학의 법칙으로만 이해되어지지 않습니다.이 관성의 법칙은 우리가 사는 삶 뿐만 아니라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이루어지고 있다면 여러분은 믿으시겠습니까? 우리의 삶과 신앙생활에서도 알게 모르게 이 아이작 뉴턴의 '관성의 법칙'이 적용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입니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식당에 가면 늘 자신이 시키는 음식만 시켜 먹습니다. 운전할 때는 늘 가던 길로만 갑니다. 오늘 우리가 입고 있는 옷과 신발도 그렇습니다. 왠만해서는 잘 바꾸려 하지 않습니다. 물론, 의도적으로 바꾸려 하지 않는 것도 있지만, 때론 내가 의식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는데도 어느 덧 습관적으로 행동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이런 것을 생활속의 관성의 법칙이라 말합니다.

 

생활속의 관성의 법칙에 대해 더 가까운 실례를 들어보겠습니다. 어느 모임이든지 늘 지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잘 살펴 보면 공통점을 보게 됩니다. 어떤 공통점입니까? 늘 지각하는 분들만 지각합니다. 또 다른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앉아 있는 자리를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그 자리에 오늘 처음 앉으셨습니까? 아닙니다. 줄곧 거기에 앉으셨습니다. 그래서 어느 덧 내 자리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관성의 법칙을 다른 말로 하면 안 바뀌려는 법칙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삶의 습관만 그렇겠습니까? 우리의 마음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만이 가진 『이유없이 싫은 것들』이 하나쯤은 다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내 생각과 스타일에 맞지 않으면 그냥 이유없이 싫다라는 것입니다. 한 예로 저희 사모는 요즘 유행하는 한국식의 남자 정장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엉덩이 다 보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합니다. 반면 저는 케주얼하고 슬림해 보여서 좋습니다.

 

그런데 이런 마음의 관성은 자신의 기호도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사람을 대할 때도 나타납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있다고 하면 도무지 그 사람을 용서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마음은 다른 사람과 좀처럼 화해하거나 타협하기를 싫어합니다. 뿐만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들의 마음이 맞는 사람들 끼리만 어울리려고 합니다.

 

또한 자기가 살아왔던 삶의 패턴에서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이것이 다른 말로 말하면 인생의 관성의 법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좀처럼 내가 하려고 하는 것들, 혹은 내가 가진 습관을 고치거나 바꾸고 싶어하지 않는 우리의 모습을 말하는 것입니다.

 

어떤 교회에서는 주보 하나 바꾸는 데, 10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 교회의 한 장로님이 주보를 바꾸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새로운 목사님이 부임해 와서 낡고 오래된 스타일의 주보를 최신에 맞는 주보로 바꿔야 한다고 해도 자신이 10년 동안 봐 왔던 스타일의 주보를 봐야 한다고 고집하셔서 결국 그 장로님이 돌아가시고 난 뒤에서야, 그 교회 주보를 바꾸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교회는 교회 피아노 위치를 옮기는 데, 일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어떤 교회는 교회 바닥 카펫트 색깔 바꾸려다가 교회가 분가한(쪼개진) 교회도 있습니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데서 나오는 오류일 것입니다. 누군가가 뭘 얘기하면 받아들일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잘 몰라서 가르쳐 줘도 자신이 말하는 것이 맞다고 우깁니다.

 

우리는 나이가 들어 가면서 이 관성의 법칙은 더 심해 집니다. 내 생각과 내 경험에서 얻는 것들을 왠만해선 포기하려 하지 않습니다. 나이가 들면 내가 가진 습관, 생각의 틀을 바꾸기도 어렵고, 잘 바뀌지도 않기 때문에 그런 것도 있는 것입니다.

 

Paradigm Shift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고의 전환 혹은 발상의 획기적인 변화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지금은 정보 시대인지라 인터넷을 통하여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거의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습니다. 급변하는 세태 속에서 옛날의 방식이나 기술만 가지고 일의 승부를 보려고 하려다가는 도태되거나 실패가 쉽습니다. 사고의 전환, 발상의 전환의 속도가 어떠냐에 따라 성공과 성패의 갈림길에 서게 됩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지금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인 말세에 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말세란 종말론적인 시간관을 가지고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하는 시대를 말합니다. 따라서 말세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고, 그 뜻대로 순종하며 주님이 원하시는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예수 믿기 전의 삶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말씀으로 도전받고 변화되기를 싫어하거나, 왕년에 한번 받은 은혜만 돌아보며 과거에 묻혀 살아서는 안 됩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조금 더 진취적이고 변화된 모습이 요구하고 있습니다. 교회 나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지가 얼마나 지나셨습니까? 1년 전과 지금, 늘 같은 모습은 아니십니까? 늘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늘 그대로의 신앙생활이어서는 안 됩니다. 언제까지 어린 아이처럼 신앙생활할 것입니까? 언제까지 먼저 솔선수범하는 신앙생활은 못하고, 누군가가 꼭 자신을 대접해 주고 세워 줘야만 교회 나오고, 하는 척 하실 겁니까? 이제는 변화받아야 합니다.

 

오늘 사도 바울은 삶과 신앙의 관성의 법칙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우리를 향해 외칩니다. 구태연한 신앙의 관성에서 나오라고 말입니다. 1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다같이 함께 큰 소리로 읽어보겠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뭐라고 말씀합니까? 먼저 예배의 태도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어떤 자세로 예배를 드렸습니까? 그저 예배를 보러 온 것이 아닙니까? 예배를 드린 것이 아니라, 예배 보러 온 것 말입니다. 찬양을 드릴 때도 내가 아는 찬양은 열심히 따라 부르고 내가 모르는 찬양이 나오면 입다물고, 주보나 보고 있고, 그랬던 것 말입니다.

 

오늘 사도 바울은 예배를 드릴 때, 어떻게 드리라고 말씀하십니까? 수동적인 자세로 앉아서 영화를 보는 관람객이 되지 말고, 구약시대 때 제물을 불태워 드리듯 우리 몸을 드리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무슨 뜻입니까?

 

열정적인 예배를 드리라는 말입니다. 누가 봐도 디트로이트한인연합감리교회는 열광적인 예배처럼 보이게 열정적으로 여러분의 마음을 드리라는 말입니다. 오늘만큼은 열광적으로 예배드리기 딱 좋은 날 아닙니까? 옆에 분들과 인사하겠습니다. 열광적으로 찬양합시다. 정신을 다른 데 두지 말고, 예배에 집중하라는 말입니다. 오늘 찬양예배 가운데 참석하신 분들, 오늘 찬양을 드릴 때 우리의 예배가, 우리의 찬양이, 우리의 열정이 회복되어지길 소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찬양예배를 통해 다시 한 번 다짐하길 바랍니다. 예배에 목숨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예배드릴 때, 적극적인 자세로 드리시기 바랍니다. 아멘으로 크게 화답하시고, 찬송을 부를 때, 힘차게 소리내어 부르시고, 지난 시간 우리를 힘들고 주눅들게 했던 모든 것들을 우리 주님 앞에 내려놓고 다 해결받고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는 오늘 말씀에서 우리의 삶의 우선순위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2절의 말씀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함께 큰 소리로 읽겠습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뭐라고 말합니까? 먼저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합니다.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제발 세상 사람들이 사는 것을 부러워하며 살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너무 좋은 집도 가질 필요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늘 나라 가면 더 크고 더 좋은 집이 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 세상의 가치관대로 살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음으로 뭐라고 합니까? 마음을 새롭게 하라고 합니다. 제발 마음 밭을 깨끗케 하시길 바랍니다. 마음을 새롭게 하시기 바랍니다. 예전에 가지고 있던 못난 마음을 제발 버리시기 바랍니다. 생각을 바꾸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뭐라고 하십니까?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라고 말합니다. 내 뜻을 먼저 생각하기 보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생각하고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 무엇인지 먼저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뭔가를 결정하고 하기 이전에 내 경험, 내 생각 다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먼저 조용히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위해서 우리가 바꾸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무엇이겠습니까? 우리의 우선순위입니다. 우리의 우선순위를 바꿀 때에 이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내 가정, 내 사업장, 내 일이 우선이었다면 이제는 하나님의 뜻이 먼저가 되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 결코 가정을 제치고, 내 사업장을 내팽개치고, 내 일을 포기하고 교회 일만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말은 바로 내 가정에서, 내 사업장에서, 내 일에 있어 내 뜻과 생각이 우선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우선이 되어 움직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무엇을 하든지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라는 생각을 먼저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내 기분에 따라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대로 교회를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믿음생활할 때에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적극 응답하실 것입니다.

 

오늘 찬양예배에 참석하신 성도님들께 권면합니다. 변화되시길 바랍니다. Change가 아니라, Transform입니다. Change는 그냥 바꾸는 것입니다. 그러나 Transform은 아예 속성 자체가 바뀌는 것입니다.

 

Change가 아니라 Transform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 말씀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늘 가까이 하시면서, 읽으시면서, 들으시면서, 암송하시면서 저와 여러분의 지금까지의 삶이 변화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온전한 뜻을 먼저 생각하며 살아가는 삶이 되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