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강해

민수기 14:1-25(천국에 들어가려면)

오비도제일장로교회 2020. 5. 6. 00:40

천국에 들어가려면

(민수기 14 1-25)

 

오늘 우리가 읽은 민수기 14장의 내용은 교회생활을 어느 정도 하셨다고 하는 분들이라면 조금은 머리속에 남아 있는 내용,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가나안 땅을 바로 정복하지 못하고 실패하였는지, 그리고 어찌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40년이라는 광야생활을 하게 하셨는지에 대한 내용이 우리의 머리속에 남겨져 있는 말씀입니다.

 

오늘 14장의 내용을 간략하게 다시 정리를 하면 이런 내용입니다. 아브라함의 손자이자 이삭의 아들인 야곱과 그의 아들 12명의 가족 70여명이 야곱의 노년에 이집트로 이민을 가게 됩니다. 그리고 430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면서 야곱의 후손들은 장정만 60만명이 넘는, 남녀노소를 합쳐 약 200만명에 달하는 큰 민족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430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그들은 이집트 땅에서 이민자의 삶이 아닌 노예로의 삶으로 바껴 버립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세에 의해 이집트에서 탈출하게 하게 하십니다. 역사상 200만명의 인구가 한 지역을 벗어나 이동한 사건은 이스라엘 민족외에는 그 어떤 역사에도 기록되어져 있지 않은 전대미문의 희귀한 인류역사학적 사건입니다.

 

여하튼 이렇게 이집트를 출발한 이스라엘 백성은 출발한지 정확히 두달만에 하나님의 산이 시내산 근처의 광야에 도달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내광야에서 약 10개월동안 생활하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성막을 준비해서 세우게 됩니다. 이때가 이집트를 탈출한지 정확히 1년이 되는 날입니다. 그리고 성막을 세운 후 한달 이십일이 지난, 출애굽후 2 2 20일에 드디어 시내광야를 떠나게 됩니다. 그리고 시내광야를 출발한 지 그리 긴 시간을 지나지 않아 드디어 가나안 땅 근처까지 오게 됩니다.

 

그리고 민수기 13장의 말씀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입니다. 모세는 12명의 정탐꾼을 구성하여 40일동안 가나안 땅을 살피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40일이 지난 후 12명의 정탐꾼들은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자신들이 보고 느낀 것을 보고하였습니다.

 

그러나 12명 중 2명을 뺀 10명의 보고를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한 일로 인해 광야에서 40년 동안 유리하게 하시고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이십 세 이상인 자 중에 아무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또한 부정적인 보고를 한 열명의 정탐꾼들은 심판을 받고 죽음을 당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뒤늦게 회개하고 가나안땅으로 들어가고자 하였으나 오히려 아말렉 족속에게 쫓겨나는 일이 발생하게 됩니다. 이것이 출애굽기와 민수기 14장까지의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한 것입니다.

 

민수기의 말씀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민수기 1-14장과 15장부터 36장까지입니다. 여기서 민수기 1-14장까지는 1차 가나안 정복시도 내용을 담고 있고 15-36장까지는 광야 40여년의 시간과 여정을 마무리되고 2차 가나안 정복을 앞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민수기 14장과 15장의 시간적 간격, Gap은 거진 약 38년 정도가 됩니다. 이점을 기억하고 민수기를 읽어나가면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즉 다시 말해 오늘까지 말씀인 14장까지는 가나안 정복 실패를 말하는 것이고 15장부터 36장까지의 말씀은 하나님의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다시 정복해 들어가는 2차 정복 전 시기를 보여주는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었던 민수기 14장은 1차 가나안 정복시도 이야기이자 이집트를 탈출한 이야기의 마지막 내용입니다. 즉 구세대들의 마지막 내용인 것입니다. 15장부터는 신세대들의 이야기를 그린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14장의 시작이 백성들의 통곡이야기로 시작합니다. 1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온 회중이 소리 높여 아우성쳤다.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였다."

 

온 회중이 소리 높여 아우성치며 백성들이 밤새도록 통곡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13장에서 보면 모세가 가나안 정복을 앞두고 12명의 정탐꾼을 보냅니다. 12명의 정탐꾼이 40일간 가나안 땅을 구석구석 살펴 본 후 보고를 합니다. 문제는 12명 중에 2명을 뺀 10명의 정탐꾼이 그 땅에 대한 보고를 할 때 부정적인 보고를 한 것이었습니다. 13 31절에서 33절의 말씀입니다.

 

31 그러나 그와 함께 올라갔다 온 사람들은 말하였다. "우리는 도저히 그 백성에게로 쳐올라가지 못합니다. 그 백성은 우리보다 더 강합니다."

32 그러면서 그 탐지한 땅에 대하여 나쁜 소문을 퍼뜨렸다. 그들은 이스라엘 자손에게 그 땅에 대해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가 탐지하려고 두루 다녀 본 그 땅은,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을 삼키는 땅이다. 또한 우리가 그 땅에서 본 백성은, 키가 장대 같은 사람들이다.

33 거기에서 우리는 또 네피림 자손을 보았다. 아낙 자손은 네피림의 한 분파다. 우리는 스스로가 보기에도 메뚜기 같았지만, 그들의 눈에도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지금 10명의 정탐꾼이 뭐라고 보고하고 있습니까?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은 불가하다고 보고 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가나안 땅의 백성들은 자신들보다도 훨씬 강하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자신들은 가나안 땅의 백성들에 비하면 메뚜기와 같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가나안 땅을 차지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이 10명의 정탐꾼들이 그 땅의 백성들의 장대함과 강함 때문에 부정적인 보고를 했다고 생각되십니까? 방금 전 제가 읽어 드린 13 32절의 말씀을 보면 재미난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32절을 다시 한 번 읽어 드리겠습니다.

 

32 그러면서 그 탐지한 땅에 대하여 나쁜 소문을 퍼뜨렸다. 그들은 이스라엘 자손에게 그 땅에 대해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가 탐지하려고 두루 다녀 본 그 땅은,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을 삼키는 땅이다. 또한 우리가 그 땅에서 본 백성은, 키가 장대 같은 사람들이다.

 

개역한글판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탐지한 땅을 악평하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그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지금 가나안 땅을 정탐한 10명의 보고내용이 뭐라고 하고 있냐면 그 탐지한 땅에 대해서 나쁜 소문을 퍼뜨렸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탐지한 땅을 악평했다고 합니다. 뭐가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분명 이들도 처음 가나안 땅을 탐지하고 와서 보고할 때는 그 땅이 좋은 땅이라고 보고 했습니다. 13 25-27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읽어 드리겠습니다.

 

25 그들은 그 땅을 탐지하러 갔다가 사십 일 만에 돌아왔다.

26 그들은 곧바로 바란 광야 가데스에 있는 모세와 아론과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로 갔다. 그들은 모세와 아론과 온 회중에게 보고하면서, 그 땅에서 가져 온 과일을 보여 주었다.

27 그들은 모세에게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우리에게 가라고 하신 그 땅에, 우리가 갔었습니다. 그 곳은 정말 젖과 꿀이 흐르는 곳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 땅에서 난 과일입니다.

 

이렇게 보고한 이들이 32절에 와서는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 탐지한 땅에 대하여 나쁜 소문을 퍼뜨렸다." 여기서 제 개인적으로 궁금한 것은 왜 10명의 정탐꾼들은 그들이 탐지한 땅에 대해서 나쁜 소문을 퍼뜨렸는가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여하튼 이들의 부정적인 보고와 나쁜 소문의 유포로 인해 민수기 14장은 1절에서 백성들이 통곡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2절에서 더 나아가 아론과 모세를 원망까지 하게 됩니다. 14 2절의 말씀입니다.

 

온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였다. 온 회중이 그들에게 말하였다. "차라리 우리가 이집트 땅에서 죽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아니면 차라리 우리가 이 광야에서라도 죽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방금 전 읽은 2절에서 주목해야 할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이집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면서 '이집트'에서 죽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부분을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집트'라는 단어가 3절과 4절에서 계속해서 반복되어져 나옵니다. 3-4절을 보겠습니다.

 

3 그런데 주님은 왜 우리를 이 땅으로 끌고 와서, 칼에 맞아 죽게 하는가? 왜 우리의 아내들과 자식들을 사로잡히게 하는가? 차라리 이집트로 돌아가는 것이 좋겠다!"

4 그들은 또 서로 말하였다. "우두머리를 세우자. 그리고 이집트로 돌아가자."

 

! 이제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할 때 이집트에서 죽는 것이 더 낫겠다고 했던 이들이 이제는 노골적으로 이집트로 돌아가자고 합니다. 심지어 4절에서는 새로운 지도자를 세우고 이집트로 가자고 아우성거리는 것입니다. 아우성 거리는 정도가 아니라 정말 이집트로 다시 돌아가려고 막 출발하기 직전인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를 탈출하여 가나안 땅에 오기까지 이들이 이집트로 돌아가자고 한 것이 이번이 처음이었을까요? 아닙니다. 이들은 이집트를 탈출하여 나온 후 그들에게 어떤 어려움만 나타나면 입에 붙은 말이 있었습니다. 바로 '이집트'라는 단어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씀을 드리면 '이집트로 다시 돌아가자'고 하였다는 것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민수기 11 4-5절입니다.

 

4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 섞여 살던 무리들이 먹을 것 때문에 탐욕을 품으니, 이스라엘 자손들도 또다시 울며 불평하였다.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먹여 줄까?

5 이집트에서 생선을 공짜로 먹던 것이 기억에 생생한데, 그 밖에도 오이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이 눈에 선한데,

 

지금 이 상황이 어떤 상황이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에서 약 1년 정도 정착후 하나님께서 명하신데로 진을 편성해서 행군을 시작합니다. 그렇게 행군을 진행한지 얼마되지 않아 백성들의 불평이 터져나오기 시작합니다. 성경은 그 불평이 무엇이었는지는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여하튼 이 불평으로 인해 하나님은 또 불심판을 내리십니다.

 

그리고 또 얼마지나지 않아 다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평하기 시작합니다. 이제는 광야길에서 먹는 문제로 불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불평하는 내용 가운데 이집트를 언급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백이 무엇이냐하면 방금 전 읽어드린 대로 이집트에서 생선을 공짜로 먹던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기억이 생생하다고 말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더 나아가 어떤 불평을 하였느냐면 11 20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너희가 너희 가운데 있는 나 주를 거절하고, 내 앞에서 울면서 '우리가 왜 이집트를 떠났던가?' 하고 후회하였기 때문이다"

 

뭐라고 하냐하면 '우리가 왜 이집트를 떠났던가?"라고 후회했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이 조금만 불편하면 그들이 생각했던 것은 이집트로 다시 돌아가자라는 것이었던 것입니다. 굳이 이집트를 떠나지 않아도 되었다는 것입니다. 굳이 이집트를 벗어나서 살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어쩜 힘들어도 이집트가 더 나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지금보다 노예로 살던 이집트땅이 더 좋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10명의 정탐꾼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고한 내용은 가나안 땅의 거민들의 강대함과 장대함의 두려움때문에 부정적인 보고를 한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10명의 정탐꾼의 보고의 문제가 뭐냐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악의적으로 이집트로 다시 돌아가려고 의도를 가지고 만든 악평이었다라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들어가야 하는 가나안 땅은 좋은 땅이 아니라고 노골적으로 나쁜 소문을 낸 것입니다. 사람이 살만한 곳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13 32절의 이들의 보고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탐지하려고 두루 다녀본 그 땅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삼키는 땅이다."

 

뭐라 그럽니까? 가나안 땅은 사람 살 곳이 못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집트가 더 좋다는 것입니다. 이집트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갈렙과 여호수아가 반박을 합니다. 7-8절입니다.

 

7 이스라엘 자손 온 회중에게 말하였다. 우리가 탐지하려고 두루 다녀 본 그 땅은 매우 좋은 땅입니다.

8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면 그 땅으로 우리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갈렙과 여호수아의 말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조금도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정직한 보고를 한 이들을 죽이려까지 합니다. 10절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온 회중은 그들을 돌로 쳐죽이려고 하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어떻게 구원받았는지에 대해 까마득히 잊어버린 것입니다. 가나안 땅까지 오기까지 어떻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역사하시고 그들을 보호하시고 그들의 필요를 공급하셨는지에 대해 기억하려 하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그들은 그들의 구원받음도 당연한 것으로 치부해 버리기 시작했는지 모릅니다. 또한 지금까지 여기 오기까지 하나님의 놀라우신 능력과 권능을 기억하지 않았습니다. 어쩜 하나님께서 순간순간 이스라엘 백성들의 필요를 채워주시고 그들의 보호하심을 그들의 노력과 우연히 그렇게 된 것으로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오늘 우리는 민수기 14장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면서 깨닫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지금 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 꼭 우리의 모습과 같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분명 주님의 은혜로 구원받게 됩니다. 노예의 삶에서, 그 어느 누구도의 도움도 없이, 그들을 구원해 줄 수 있는 여건과 상황은 전혀 없는 상태에서 주님은 아무 자격도 없는 이들을 값없이 구원해 주셨습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그 구원의 감격을 이내 잊어버리고 맙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날마다의 은혜도 금새 잊어버렸습니다. 홍해를 건너게 하신 큰 사건도 이들의 마음과 생각속에 담아 두지 않았습니다. 날마다 주시는 일용할 양식인 만나도 그들은 더 이상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물이 없을 때마다 생수를 공급해 주신 은혜도 잊어버렸습니다.

 

그리고는 아무 것도 해 주지 않았던 이집트에 오히려 더 감사하고 이집트를 더 생각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어쩜 우리도 이런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받은 구원의 감격은 잊어 버린 채, 왜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 좋은 것을 주지 않냐고 불평하고 있지 않습니까? 날마다 나에게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지 못하고 내 앞에 놓여진 시련과 어려움 때문에 우리 입에서는 불평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저도 개인적으로 반성을 많이 해 보았습니다. 주께서 주신 은혜가 너무나도 큰 데 요즘 저의 삶은 불평과 원망의 삶이 아니었는지, 감사를 잊고 살지는 않았는지, 내가 가진 능력이라고 생각하며 교만하진 않았는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고 구원받은 후 다들 생각하실 것입니다. 구원 받은 그 이후의 삶은 모든 것이 만사형통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우리는 이내 알게 됩니다. 구원받은 그 이후 우리의 삶은 부단히 시험과 어려움과 역경이 우리 앞에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며 우리를 넘어지게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때 기억해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시험과 어려움과 역경같아 보여도 그 모든 것을 다 주님께서 능히 극복하고 이기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우리의 힘과 노력이 아닌 주님께서 직접 간섭하셔서 그 문제를 해결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해결해 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게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이집트를 바라보는 시선입니까? 아닙니다. 믿음입니다. 어떤 어려움과 시련, 시험속에서도 반드시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바라보고 믿음을 가졌더라면 그들은 40년이라는 광야시간을 보내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어쩜 우리도 그 현장에 있었더라면 이스라엘 백성들과 똑같이 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오늘날 성경이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야기를 들려 주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비록 우리의 성향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다 하더라도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교훈삼아 믿음의 승리를 하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현재 여러분 가운데 여러분의 삶이 불평스런 환경속에 있는 분이 계십니까? 왜 나만 이러냐는 생각에 계시는 분이 계십니까? 그리고 예전이 더 좋았다고 생각하고 이집트를 생각하는 분이 계십니까? 그렇다면 빨리 돌아서십시오. 힘들어도 지금이 가장 좋은 시기입니다. 지금이 주님의 은혜가 부어지는 시기입니다. 지금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의 눈으로 전진하라고 말씀하시는 시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