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강해

요한계시록 20;1-15(마지막을 기억하자)

오비도제일장로교회 2020. 5. 6. 04:07

마지막을 기억하자

(요한계시록 20:1-15)

 

오늘 이 시간 우리는 다시 오지 않을 2017년도의 마지막 시간을 함께 보내고 아직 그 어느 누구도 가 보지 않은 2018년도의 시간을 기다리는 시간에 서 있습니다. 오늘 송구영신예배 말씀을 생각하면서 어떤 말씀을 사랑하는 성도들과 나누면 좋을까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아무래도 오늘은 마지막 예배를 드리게 되다보니, 마지막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송구영신예배 말씀을 성경의 마지막부분이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가지고 나누고자 합니다.

 

성도들이 성경 66권 가운데 어려워하는 성경이 있다면 당연 요한계시록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의 말씀은 읽어도 무슨 소린지 도대체 이해하기도 쉽지 않고, 또한 알고 있다고 해도 애매하게 알고 있는 것이 요한계시록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에서 요한계시록이 차지하는 비중은 믿는 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위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비단, 믿는자들에게 뿐만 아니라, 이 요한계시록은 일반적인 세상 사람들도 관심을 가지고 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이 무엇 때문에 믿는 자들에게나 믿지 않은 자들에게 중요한 것이겠습니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그 어떤 책도 말하지 않는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세상의 마지막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드라마를 보더라도 끝까지 보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마지막이 궁금해서 그렇지 않습니까?

 

사람들은 이 세상의 마지막에 대해 대단한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유한한 인간인 우리는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 우리의 삶의 끝인 마지막이 있다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은 알고 보면 태어나서부터 줄곧 마지막을 행해 가고 있는 기차와 같습니다. 이 말은 마치 기차가 종착역을 향해 달리는 것과 같이 우리 인생도 태어나면서부터 종착역을 향해 달리고 있다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 마지막에 무엇이 있을지, 우리의 마지막은 어떤 것인지 우리 모두는 자의든 타의든 궁금해 하는 것입니다.  

 

혹시 이런 생각을 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제가 중, 고등학교를 다닐 적에 공상을 떠는 시간들이 종종 많았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인간이 언제부터 24시간이라는 시간을 사용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생각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런 생각을 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우리가 쓰는 달력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우리가 쓰는 시간은 왜 시작과 끝이 있겠금 만들어 놓았는지 말입니다. 그냥 무한대로 가도록 해 놓아도 상관없었을텐데 말입니다.

 

1분을 왜 60초로 나누어 놓고 60초가 지나면 다시 1초부터 시작하게 한 것인지, 한 시간을 60분으로 나누어 놓고 59분이 지나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게 했는지, 하루 24시간과 한달, 그리고 1년을 12달로 나누어 놓고 12월 마지막을 생각하게 하고, 다시 시작하게 했는지를 여러분들은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저는 한국에 있을 때, 사람들이 매년 12 31일이 되면 정동진이라고 곳으로 가서 새해 첫 일출을 보는 광경을 보면서 새해 첫 일출을 보겠다고 몰려드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습니다. 사실 12 31일 뜬 해와 1 1일에 뜬 해가 물리적으로 다른 것입니까? 아닙니다. 어제의 해와 오늘의 해는, 그리고 내일의 해는 전혀 다른 해가 아닙니다. 어제의 그 해가 여전히 오늘도 똑같이 뜬 것입니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사람들은 12 30일에 뜬 해와 31일에 뜬 해를 달리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12 31일 뜬 해와 1 1일 뜬 해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이들은 1 1일에 뜨는 해를 보며 소원까지 빕니다. 도대체 왜 사람들은 시간의 마지막과 새로운 시작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인간 본성에 자리잡은 영원한 삶에 대한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믿는 사람이든 믿지 않는 사람이든 인간의 마음 속에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심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전도서 3 11절 말씀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He has made everything beautiful in its time. He has also set eternity in the hearts of men; yet they cannot fathom what God has done from beginning to end.

 

하나님께서 인간들 마음속에 영원한 삶에 대한 그림자를 남겨 놓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이 세상의 마지막이 끝나면 새로운 영원한 세상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본성적으로 이 세상이 끝나고 나면 영원한 삶이 있을 것임을 잊지 않기 위해서, 이 세상의 마지막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기 위해서, 인간 스스로가 시간의 끝을 만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끝을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 성경, 요한계시록도 우리에게 말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이 세상의 끝이 있다는 것입니다. 마냥 영원하다고 생각하고 이 땅의 것만 바라보고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영원히 있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모두가 바로 그 끝으로 향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요한계시록은 말해 줍니다. 창세기 1 1절에서 시작된 이 세상이 마지막 끝을 향해 가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또한 오늘 요한계시록은 2017년도 마지막 예배를 주님께 드리는 성도들에게 묻습니다. 우리 인간의 끝은 어디인가를 말입니다.

 

장소를 나타내는 ''라는 말, 예를 들어 거기 어딘데?’라고 물을 때 라는 말과 시간을 나타내는 '라는 말은 어원이 같다고 합니다. 한자의 '장소'를 나타내는 땅지()와 시간을 나타내는 시()라는 말은 각각 발음이 중국발음으로 "" ""로 같은 어원을 갖는다고 합니다. 이 말은 결국 내가 선 이곳, 이 장소가 결국은 시간을 따라 정해진 장소로 흘러간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시간을 타고 마지막 어디로 가는 것일까요? 오늘 본문 11절에서는 말합니다. 다같이 11절을 보겠습니다.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데 없더라


Then I saw a great white throne and him who was seated on it. Earth and sky fled from his presence, and there was no place for them.

 

우리 인간들이 가는 마지막 때와 장소가 어디라고 합니까? 흰 보좌 앞이라고 합니다. 그 보좌 앞에는 믿지 않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믿는 이들도 서게 된다고 합니다. 12-13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13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모두가 다 하나님의 흰 보좌 심판대 앞에 선다고 말합니다. 바다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준다고 합니다. 그런데 바다와 사망과 음부가 그 죽은 자들을 내 주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심판받기 위함입니다. 바로 마지막에는 다 심판을 받는다고 합니다. 남녀노소, 빈부귀천 할 것없이 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고 합니다.

 

우리 인생의 결국은 바로 하나님의 심판앞으로 가는 인생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9 27절에서 분명히 우리에게 말합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그런데 요한계시록 2012절말씀을 보시면 하나님의 보좌 앞에 무엇이 있다고 합니까? 책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 책들은 두 종류의 책으로 분류되어 있는데, 하나는 죽은 자들이 생전에 자신들이 한 행위가 기록된 책이고 또 하나는 생명책이라고 합니다. 본문 20 13절에서 각각 사람들은 책에 기록된 내용대로 심판을 받는다고 합니다. 13절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이 땅에 살면서 우리의 행동이 얼마나 중요한 지 이제 아시겠습니까? 내가 지금까지 한 행동 하나 하나가 다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 어떤 행동도 하나님 앞에서는 잊어진 바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저지른 행동은 낫낫이 다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행동에 대한 대가를 반드시 지불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저지른 죄에 대한 대가의 무시무시함을 말합니다. 영원한 불 못에 떨어지는 고통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비참한 것입니다.

 

이 땅에서 아무리 잘 먹고 잘 살면 뭐합니까? 죽어서 저 고통스런 불 못에 떨어져 버리면 그것만큼 허무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 땅에서 살 때, 우리는 행동 잘 해야 합니다. 남에게 나쁜 짓 하면 안 됩니다. 착하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한 행동대로 다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책에 다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그 기록된 대로 우리는 저주를 받아 불 못에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 때에 우리에게 일어날 일입니다.

 

그런데, 또 하나의 책이 있습니다. 무슨 책입니까? '생명책'입니다. 이 생명책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15절을 보겠습니다.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무슨 말입니까? 살리는 책이 있다고 말합니다. 아무리 극악 무도한 죄를 지은 자라 할지라도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자는 영원한 불 못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백보좌 심판에서 구원받는다고 합니다. 누가 구원받는다고 합니까?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이 구원받는다고 합니다.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생명책'에 여러분의 이름이 기록되어져 있음을 확신하십니까? 믿으십니까? 하나님의 백보좌 앞에 당당히 설 수 있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생명책에 저와 여러분의 이름이 어떻게 기록될 수 있습니까?

 

요한복음 5:24-29절을 함께 보겠습니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25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2017년도 마지막 예배와 함께 마지막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 신앙의 옷깃을 다시 한 번 꽉 붙들어 매는 결단이 있기를 소원합니다. 그리고 다가오는 2018년도는 정신 바짝차리고 믿음의 경주를 잘 출발할 수 있도록, 신앙의 첫 단추를 잘 채울 수 있게 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