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

마태복음 26:26-30(새 언약의 피)

오비도제일장로교회 2020. 5. 6. 00:47

새 언약의 피

(마태복음 2626-30)

 

오늘의 본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식사를 하면서 행하신 일입니다. 유대인들은 역사적으로 그들의 명절 가운데 가장 중요한 명절로 유월절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유월절 당일은 아무렇게 보내는 것이 아니라, 온 가족이 반드시 중요한 몇 가지 예식을 행하면서 그 날을 보냅니다.

 

유월절의 유래는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 옛날 이집트에서 노예생활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민족의 지도자 모세를 보내셔서 이집트에서 나와 지금의 가나안에 정착하게 하신 것, 쉽게 말해 출애굽하게 하신 것을 감사하고 기념하는 것이 유월절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집트에서 가나안 땅으로, 지금의 팔레스틴에 정착한 이후, 유대인들은 어느 시대든지 또 어디 살든지 유월절만은 철저하게 지켰고, 또 그들의 조상들이 유월절 식사를 하던 것과 똑같이 식사를 준비하고, 또 조상들이 먹었던 똑같이 음식을 준비해서 식사를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과거를 잊지 않고 하나님의 구원을 생각하고 후대에게 신앙적으로 물려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교회도 올해 교회설립 45주년을 맞이합니다. 우리교회도 우리 자녀들에게 지난 45년 동안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를 같이 기념하고 기억할 수 있는 행사가 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여하튼 유대인들의 유월절 식사는 단순히 가족들이 모여 음식을 먹고 마시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민족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생각하는 시간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 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여전히 적용되고 있습니다. 과거의 고난과 슬픔을 기억하고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축복에 감사하며 미래의 소망을 간구하는 시간, 그것이 바로 유대인들의 유월절 식사시간인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식사를 하기 전에 꼭 하는 일이 있는데 그것이 뭐냐면 식사를 시작하기 전, 가정의 자녀들이 부모들에게 네 가지 질문을 시작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질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왜 이 밤에 우리는 마짜(무교병)를 먹습니까?

왜 이 밤에 우리는 쓴 나물을 먹습니까?

왜 우리는 이 밤에 파슬리(셀러리)를 소금물에 두 번 찍어 먹습니까? 또 쓴 나물을 왜 하로셋에 찍어 먹습니까?

왜 우리는 유월절 음식을 뒤로 비스듬히 기대어 먹습니까?

 

이렇게 네 가지 질문을 받게 되면 가정의 가장인 아버지는 자연스럽게 출애굽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대답이 끝나고 나면 모든 식구들이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베푸신 이적과 기사를 찬양하며 '다예누'라는 노래를 합창합니다. "그가 우리를 애굽에서 불러내신 것만으로도 얼마나 충족한가!"라는 내용의 노래입니다. 노래가 끝나면 포도주를 마십니다.

 

그리고나서 본격적으로 음식을 먹기 시작하는데 이때 다시 아버지가 음식을 들고 축복기도를 한 후 먼저 쓴 나물을 먹습니다. 이때 쓴나물은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의 노예 생활을 기억하기 위하여 먹는 것이므로 뒤로 비스듬히 기대어 먹지 않고 똑바로 앉아서 먹어야 합니다.

 

여하튼 이렇게 유대인들은 해마다 유월절 음식을 같이 먹으면서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구원해 주신 것을 기념하고 찬양했습니다. 이런 식사의 흐름 속에서 오늘 본문의 제자들도 여느 때와 같이 열심히 무교병과 야채, 고기 등을 먹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빵을 들어서 축복하신 다음에,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시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생각해 보지 못한 것처럼 예수님께서 저녁식사를 하고 있는데 뜬금없이 갑자기 일어나셔서 떡을 때고 축복하시고 한 것이 아니라 유월절 식사 절차에 따라 진행하시면서 떡을 가지고 축복하셨다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6절의 말씀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26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떡을 나누어 주시고 난 후에 어느 정도 식사가 진행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후식으로 포도주를 마실 차례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시 잔을 들어서 감사 기도를 드리신 다음에, 그들에게 주시고 말씀하셨습니다. 27-28절의 말씀입니다.

 

27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여러분! 28절의 말씀에서 예수님은 앞으로 십자가를 지시면서 자신이 흘리게 되는 피를 뭐라고 하셨습니까? '언약의 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언약의 피'가 무슨 의미입니까? 지금 저와 여러분의 머리속으로 떠올리는 그런 내용일까요? ‘아 십자가에서 죽으시겠다라는 그런 의미 말입니다.

 

출애굽기 24 4-8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함께 교독해 보겠습니다. 제가 먼저 4절을 읽겠습니다.

 

4 모세가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기록하고 이른 아침에 일어나 산 아래에 제단을 쌓고 이스라엘 열두 지파대로 열두 기둥을 세우고

5 이스라엘 자손의 청년들을 보내어 여호와께 소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게 하고

6 모세가 피를 가지고 반은 여러 양푼에 담고 반은 제단에 뿌리고

7 언약서를 가져다가 백성에게 낭독하여 듣게 하니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8 모세가 그 피를 가지고 백성에게 뿌리며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을 시내 산으로 인도한 모세는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수송아지들을 잡아 하나님께 번제와 화목제를 드린 다음에 그 피의 절반을 제단에 뿌리고, 나머지 절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뿌리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시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시는 언약을 체결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지켜주시고,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만을 섬기기로 약속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언약을 충실히 지키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어떻게 했습니까? 틈만 나면 하나님과의 언약을 죽 먹듯이 깨뜨리기 일쑤였습니다. 걸핏하면 하나님을 떠나가고, 하나님을 배반했습니다. 꼭 우리의 모습과 비슷하지 않습니까? (우리 역시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하루에 수십번도 하나님을 버리고 살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

 

그래서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맺은 언약만으로는 안 된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다시 "새로운 언약"을 체결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는 육신적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니라, 영적인 이스라엘 백성들과 새로운 언약을 맺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새로운 언약을 맺게 되면 "지금까지 그들이 지은 죄와 허물을 용서하고, 그들의 죄와 허물을 다시는 기억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선포한 선지자가 있었습니다. 바로 예레미야 선지자였습니다. 예레미야 31 31-34절의 말씀입니다.

 

3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32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3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4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마침내 이스라엘 백성들에 의해 깨어진 옛 언약 대신 예레미야를 통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새 언약을 맺으셔서 새롭게 하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새 언약이 누구를 통해서 이루어진 것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새 언약이 성취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새로운 언약의 피를 흘리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흘리신 피로써 새로운 언약을 맺어 주시고, 그 결과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기억지도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의 모든 죄가 용서되었음을 기억하시고 선포하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내가 지은 모든 죄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다 씻어졌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는 바로 "언약의 피", 이것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예수님의 피로 맺는 새로운 언약"을 우리와 맺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시점에서 결정적인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언약의 피"를 흘리셨다면 그 "언약"의 내용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도대체 주님은 우리에게 당신의 피를 흘리심으로써 무엇을 약속하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 언약이 죄사함을 말하고 있긴 합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새 언약이란 단순히 우리의 죄만 용서해 주시는 것이겠습니까? 예수님이 흘리신 보혈이 우리에게 죄사함만 주는 것이겠습니까? 정말 그것 밖에 없는 것이겠습니까?

 

결론부터 말씀을 드린다면, 예수님께서 흘리신 피로 인해 우리와 맺은 언약은 죄사함 뿐만 아니라,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이루시게 될 부활"이고, 또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도 똑같이 "죽음에서 부활로 변화되는, 부활의 영광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다시 말해서, 우리에게 영생(영원한 생명/ 부활의 의미를 조금 더 추가적으로 설명)이 주어지게 된 것이 예수님께서 흘리신 피의 언약으로 성취되었다는 것입니다. 2000년 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피 흘리심으로, 그 피를 믿고 의지하는 자들에게 죄사함은 물론이거니와 부활하여 영원한 생명(창조시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셨을 때 당시 그 상태로 우리를 만드시겠다는 것)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언약의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이미 들었던 마태복음 16 24-25절의 말씀입니다. 다 함께 찾아 보겠습니다.

 

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그렇습니다. 자기 목숨을 구하고자 하나님을 버리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잃을 것이요, 주님을 위하여 자기 목숨까지라도 버리는 사람만이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처럼 주님을 위해 모든 것을, 심지어는 목숨까지도 버릴 각오를 하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옛날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제든지 하나님께서 명령만 내리면 떠날 준비를 하고 음식을 먹던 것과 같이 주님의 명령에 언제든지 순종할 자세를 갖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 새 언약의 피를 흘리심으로 우리를 구원의 길로 초청하셨습니다. 나를 따르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란 단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심만을 드러내시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는 장차 우리가 받을 부활을 우리에게 주는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가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이유는 십자가를 통해서만 우리에게 부활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를 때, 묵묵히 그 십자가의 삶을 순종할 때, 장차 오실 예수께서 영원한 생명뿐만 아니라 부활의 영광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십자가를 통해 새 언약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부활입니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자들만이 부활할 수 있습니다. 아무나 부활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부활은 십자가를 아는 자들만이 부활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우리에게 부활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쉽게 살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편하게만 살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어려워도 힘들어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세상 사람들처럼 사는 것이 아니라, 영원하 천국에 우리의 생각과 가치를 두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른 뺨을 때리면 왼빰도 내어 줄 준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겉옷을 달라하면 속옷까지 줄 생각을 해야 합니다. 1.5마일을 강제로 같이 걷자고 하면 3마일을 함께 동행해 주려고 해야 합니다.

 

그래서 쉽지 않습니다. 뭐가 말입니까? 예수믿는다는 것 말입니다. 자신의 십자가를 진다는 것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생활이란 발버둥치는 것입니다. 그냥 앉아서 설교듣는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듣고 나서 현장에 나가서는 무지하게 싸워야 합니다. 나 자신과 싸워야 하고, 세상과 싸워야 하고, 세상 사람들의 비난과 손가락질 속에서도 주님을 믿는 믿음을 지키기 위해 발버둥쳐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우리 주님 다시 오시면 우리에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말입니다.

 

이 시간 우리 모두 주님의 언약을 기억하고 주님을 따르겠다고 다짐함으로써 구원의 참된 축복을 누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