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14:1-9(정결하여라)
정결하여라
(레위기 14:1-9)
레위기 13장과 14장의 말씀은 따로된 말씀이 아니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짝을 이루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레위기13장은 악성피부병에 걸린 환자를 제사장이 진단하는 내용을 담고 있고 14장의 말씀은 13장에서 제사장이 진단한 환자가 일정한 치료기간을 지나 그 악성피부병이 완쾌되었을 때 행하는 정결예식을 말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레위기 13장과 14장에 나오는 이 병은 개역한글판 성경에서는 ‘문둥병’, 혹은 ‘나병’, ‘한센스씨병’으로 이야기하고 있지만, 개역한글성경에서 소개된 이 ‘문둥병’이 오늘날 의학적 근거로 볼 때 진짜 ‘문둥병’ 증세라기 보다 우리가 읽었던 새번역에서 번역하고 있듯이 악성피부병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레위기 14장은 악성피부병으로 진단받아 다른 지역에서 일정기간동안 격리되었던 사람들이 피부병에서 치료가 되었을 경우 공동체로 다시 복귀하는 과정을 통해 이것은 ‘문둥병’을 말하는 내용이 아니라, 출애굽 당시 일반적으로 광야생활 속에서 쉽게 생길 수 있는 피부병 현상을 말하는 것이며 그 질병을 통제하고자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서두에서 잠시 말씀을 드린 대로 13장을 읽어 보신 분이라면 오늘 14장은 악성피부병에서 고침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이 다시 자신들의 삶에 자리로 복귀하는 과정이 복잡하게 기록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 왜 하나님은 악성피부병에서 고침을 받고 다시 부정에서 정함으로 이동하기 위해 이런 복잡하고도 어려운 절차를 거치게 했는지를 살펴 보고자 합니다. 또한 오늘 말씀을 통해 그 절차의 복잡함 속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를 나누길 원합니다.
오늘 본문 2절과 3절의 말씀을 다시 한 번 보겠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2 "다음은 악성 피부병에 걸린 환자를 정하게 하는 날에 지켜야 할 규례이다. 사람들이 악성 피부병에 걸린 환자를 제사장에게로 데려가면,
3 제사장은 진 바깥으로 나가서, 그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 환자의 악성 피부병이 나았으면,
우선 악성피부병이 발견된 환자가 그 병으로부터 호전되거나 개선되는 현상이 있을 때에 반드시 제사장에게 데려가야 했습니다. 자기 스스로 정함과 부정함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회복의 여부는 제사장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함을 보여 줍니다. 이것은 오늘날 신앙생활하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의미를 전해 줍니다. 우리의 일신상의 문제를 우리 스스로 판단하고 해결하려 해서는 안 됨을 보여 줍니다. 가급적이면 교회의 영적 리더쉽들과 함께 그 문제를 공유하고 같이 기도하는 가운데 해결할 수 있도록 해야 함을 말하는 것인지 모릅니다.
여하튼 이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악성피부병에 걸렸다고 해서 일단 무조건 진밖으로 쫓겨나는 것이 아니라 진중 특정 구역에 격리되어져 관찰되어지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은 늘 환자를 지켜보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일정 기간이 지난 이 환자의 상태가 나아지면 사람들은 제사장에게 진단해 줄 것을 요청하기 위해 그 환자를 제사장에게 데려갑니다.
이 때 제사장은 사람들이 데려온 환자를 관찰하고 진단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제사장의 진단은 비록 그 사람이 악성피부병에서 나았다고 해서 정결의식도 행하지 않은 채 바로 공동체로 복귀케 하지 않았습니다. 먼저 나음을 받은 자들은 제사장과 함께 진 밖으로 나가서 그를 먼저 살피게 됩니다. 이때 제사장은 병을 고치는 의학적인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라, 병의 유무를 가리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제사장이 보기에 악성피부병이 나았다고 생각된다면 그 사람을 정결하게 하는 의식을 거행합니다. 이때 정결의식에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게 됩니다. 정결의식에 필요한 물건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정결한 산 새 두 마리(산山이 아니라 살아 있는 새)와, 백향목, 홍색실, 우슬초, 그리고 개역한글에는 질그릇으로 되어 있지만 새번역에는 오지그릇, 즉 장독과 같은 조금 큰 진흙으로 구워서 만든 독을 준비해야 합니다.
이들 가운데 두 마리의 새 중에 하나는 죽여서 잡고 오지그릇에다 생수를 담고 그 잡은 새의 피를 썩게 됩니다. 그리고 백향목과 홍색실, 그리고 우슬초도 함께 그 오지그릇에다 담아 놓습니다. 그 후에 제사장은 살아있는 새를 오지그릇에 담겨진 피썩인 물에 찍어서 그 사람에게 일곱 번을 뿌립니다. 그리고 난 후 살아있는 나머지 새 한마리를 들판으로 날려보내야 합니다. 들판으로 날려 보내는 이유는 환자의 병과 부정한 것을 가지고 멀리 날아가라는 의미를 담고 있고 있기 때문에 행하는 의식인 것 같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흔히 죄를 범한 경우에 돌로 쳐죽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 돌을 던지는 것은 돌을 던짐으로 인하여 나에게도 죄를 짓고 싶어하는 마음을 돌과 함께 던지는 의식이며 그 돌을 맞는 사람이 나의 죄까지 감당하도록 하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비슷하게 이스라엘의 의식 중에서는 대속의 의미로 염소 한 마리를 광야로 흘려 보내면서 사람들의 죄까지 짊어지고 떠나게 하는 것이 앞으로 보게 될 어린양과 아사셀의 염소입니다. 바로 이 악성피부병에서 나음을 받은 사람이 정결하게 되는 의식을 거행하면서 새를 날려보내는 것도 이런 의미가 담겨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결하게 되는 의식에 사용되는 새의 피와 백향목과, 홍색실, 우슬초는 모두 생명을 회복하고 정결하게 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특별히 우슬초는 출애굽기 12장 22절에 보면 유월절에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를 때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예수님께 신포도주를 드릴 때 우슬초가 사용되었습니다. 시편 51편 9절을 보면 부정한 것을 정결하게 하는 용도로 우슬초가 사용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6절에 등장하는 ‘생수’은 살아있는 물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살아 있는 물이란 생명력을 가진 물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또한 정결의식에 사용되는 그릇인 오지그릇 역시 구별된 특별한 그릇이어야만 합니다. 이스라엘 전승에 의하면 정결의식에 사용된 그릇은 아무도 사용하지 않은 새 그릇이어야만 했다고 합니다. 아마도 레위기 11장 33절을 보면 의식에 사용된 그릇은 쉽게 오염될 수 있기 때문에 사용한 후에 깨뜨려 버리라고 모세는 명한 것 같습니다.
여하튼 정결하게 하는 의식은 새 두 마리 중에서 한 마리를 잡아서 살아있는 새에게 피를 찍은 후, 병이 나은 사람에게 일곱 번 피를 뿌리고 그 새는 다시 들판으로 날려보냅니다. 이때 백향목과 홍색실은 피의 색깔을 진하게 만드는 데 사용하며, 우슬초는 피를 머금어 뿌리는 도구로 사용합니다.
이렇게 사람에게 피나 물을 뿌리는 행위는 모세의 오경에 자주 등장하는 의식행위가 아닙니다. 레위기 8장에서 아론과 그의 아들들의 위임식 때에 모세가 한 의식입니다. 민수기 19장에서는 만약 사람이 시체를 만졌을 경우에 붉은 암송아지를 불사른 재를 탄 물을 뿌려서 정함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본문에서와 같이 악성피부병에서 나은 사람을 정결하게 하는 경우를 위해 피를 뿌리는 행위를 합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의 행위에서 발견되는 공통점이 있는데 바로 앞에서 언급한 사람에게 피나 물을 뿌리는 행위 모두가 상태변화를 가져 온다는 것입니다. 즉 이 말을 쉽게 설명드리면 아론의 위임식과 같은 경우, 보통의 사람이 하나님의 거룩한 제사장의 신분으로 변화되어질 때 행했다는 것입니다. 또한 시체를 만져 부정케 된 사람이 시체와 같이 죽은 존재에서 다시 산 존재의 상태로 바뀐다는 의미를 가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진영 밖에서 피를 뿌리는 것은 죽음의 존재였던 사람이 생명의 존재로 상태가 바뀐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새를 날려버리는 의식’을 통해서도 우리에게 주어진 죽음의 그림자를 멀리 떠나 보내고 새로운 생명이 주어진다는 것을 의미함을 알 수 있습니다. 들판으로 날아가는 새는 레위기 16장에 속죄를 위해 선택된 염소를 아사셀을 위해 광야에 보내어 죽게 하는 의식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죄를 짊어지고 광야로 가는 아사셀의 염소와 같이, 산 새는 악성피부병자의 부정을 흡수하여 들판으로 날아가 부정을 제거하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여하튼 살아있는 새와 살아있는 물, 그리고 생명을 가리키는 피가 사람을 죽음의 상태에서 생명의 상태로 바꾸고 죽음의 세력으로 인하여 부정하게 된 것을 정결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렇게 새를 날려보내는 의식을 거행한 후에 ‘옷을 빨고 모든 털을 밀고 물로 몸을 씻는’ 과정을 거쳐서 비로소 진 밖에서 진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허용됩니다. 그런데 진 안에 들어왔다고 해서 자기 장막으로 바로 가서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8절 말씀을 보면 이렇게 말합니다.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정하다는 선언을 받은 그 사람은 옷을 빨고, 털을 모두 밀고, 물로 목욕을 하면, 정하게 된다. 그리고 진으로 돌아온 뒤에, 그는 이레 동안 장막 바깥에서 살아야 한다."
뭐라고 그럽니까? 정하게 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곧바로 자신의 장막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레 동안 장막 바깥에서 또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9절을 보면 또 이렇게 말합니다.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이레째 되는 날에 그는 다시 털을 모두 밀어야 한다. 머리카락과 수염과 눈썹까지, 털을 다 밀어야 한다. 그런 다움에, 옷을 빨고 물로 목욕을 하면, 그는 정하게 된다."
7일 동안 자기 장막 밖에 거한 후에 7일째 되는 날에, 다시 모든 털을 밀고 옷을 빨고 몸을 물에 씻는 의식을 거행합니다. 이러한 절차를 통해서, 완전히 정결하게 되어 자기 장막에 들어 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정말 까다롭지 않습니까? 만약 저와 같이 성질이 급한 사람들이 있다면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됐을 때 아예 정하게 되는 것을 포기하고 만다라고 생각하게 될 지 모르겠습니다. 근데 문제는 이것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또 다른 추가적인 요구사항이 있습니다.
우리가 읽지는 않았지만 10절에 보면 이렇게 말합니다.
"여드레째 되는 날에, 그는 흠 없는 숫양 두 마리와 흠 없는 일 년된 어린 암양 한 마리와 곡식제물로 바칠 기름 섞은 고운 밀가루 십분의 삼 에바와, 기름 한 록을 가져 와야 한다."
지금 뭐라고 말씀하고 있냐면 다시 정리를 해 드리자면, 피부병이 나서 격리되었는데, 일정기간 동안 사람들과 격리되어 있다가 그 병이 호전이 되어서 제사장에게 자신을 보였더니 괜찮다고 해서 진밖에 나가서 새도 잡고 또 피도 뿌리고 또 다른 새 한마리는 다시 날려 보내고 해서 진 안으로 들어 왔는데, 다시 7일 동안 집으로 가지 못하고 온 몸의 털이라는 털은 죄다 밀어버리고 옷도 빨고 목욕도 하고, 그것 뿐만 아니라, 제8일째 때는 속건제, 속죄제, 번제, 소제를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의 5대 제사가운데 4가지를 한 번에 드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물론 제사를 드리라고 한 이유는 이제 악성피부병이 나았고, 정결하게 되는 복잡한 절차도 거쳤기 때문에 여호와 앞에 나갈 수 있게 되었고 또 다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악성피부병에서 해방되기 까지, 다시 예전의 삶을 돌아가기 위해서 거쳐야 하는 절차가 보통 까다로운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11절부터 해서 레위기 14장 57절 마지막 구절까지 구구절절 어떻게 하나님께 제사드려야 되고 정하다는 진단과 함께 다시 원래의 자리로 어떻게 회복되는지에 대한 방법과 규례에 대해서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 복잡한 악성피부병으로부터 회복되는 절차를 통해 우리는 두 가지를 묵상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악성피부병에 걸렸던 자들이 다시 정하다고 선포되어졌을 때 다시는 그 악성피부병에 걸리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들이 악성피부병에 걸렸을 때 사랑하는 가족들과의 격리와 그 격리로 인해 오는 외로움과 고독, 아픔과 절망을 맛보았습니다. 그리고 공동체로부터의 단절이 가져다 주는 비참함을 누구보다도 절실히 느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다시 회복의 기회가 왔을 때도 그들의 삶의 자리로 다시 나아가기 위해서는 그냥 쉽게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복잡한 절차를 통과해서 나가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를 통해서 악성피부병으로부터 회복된 이들은 다시는 자신들의 몸이 악성종기나 피부병이 노출되지 않도록 각고의 노력을 할 것입니다. 자신의 몸을 청결하게 하기 위해 최선을 노력을 해서 지키려 할 것입니다. 자신들이 다시받은 구원에 대한 감격을 소중히 간직한 채 열심으로 잘 살려고 할 것입니다.
오늘 악성피부병에서 회복된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면서 우리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이 얼마나 값진 구원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구원이 그저 값싼 싸구려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값어치와도 바꿀 수 없는 너무나도 비싼 대가를 지불하고 받은 소중한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2장 12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언제나 순종한 것처럼, 내가 함께 있을 때뿐만 아니라 지금과 같이 내가 없을 때에도 더욱 더 순종하여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자기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십시오."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우리의 구원을 만들어 가라고 말하니다. 만약 우리의 구원이 너무나 값진 것임을 안다면 우리는 교회생활이나 신앙생활을 나태하게 하거나 함부로 쉽게 하려 하지 않을 겁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의 매 순간 순간을 절박한 심정으로 드리게 될 것입니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정말 소중하게 생각하며 성도와의 만남을 만들어 갈 것입니다. 방종적인 신앙생활은 절대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가끔 우리는 우리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받은 구원이 너무나도 비싼 구원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신앙모습은 그 값어치를 잊어버린 모습을 보게 됩니다. 교회를 너무 쉽게 생각합니다. 교회를 너무 쉽게 다닙니다. 예배도 너무 쉽게 건성으로 드립니다. 얼마 전에 은혜받았다고, 나도 예수님을 만난 경험이 있다고 말은 하지만, 삶 속에서 진정으로 은혜받은 사람의 모습으로, 거듭난 사람의 모습으로 살지 않고 여전히 막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 히브리서 6장 4-6절은 우리에게 엄중한 경고를 합니다.
"한번 빛을 받아서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을 나누어 받고 또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장차 올 세상의 권능을 맛본 사람들이 타락하면 그들을 새롭게 해서 회개에 이르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금 십자가에 못박고 욕되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구원받았다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고 해서 그게 다가 아닙니다. 만약 구원을 받았다고, 그 은혜를 받았다고 한다면 그것의 소중함을 알고 지켜 가야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이 구원받은 이후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은혜받은 그 이후의 삶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악성피부병으로부터 다시 회복이 되고 그들의 가정으로 돌아갔을 때 각고의 노력으로 자신의 몸을 돌봄과 같이 우리 역시도 구원의 감격과 하늘의 은혜를 맛보았다면 우리의 영적이 상태를 날마다 점검하며 성령충만할 수 있도록 늘 우리의 영혼을 지켜내야 함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 레위기 14장의 악성피부병에 관한 규례를 통해서 우리는 제사장의 역할이 주는 의미를 묵상해 볼 수 있습니다. 제사장은 이스라엘의 신앙공동체의 정결함을 유지하기 위해서 전력을 다해 애쓰고 관심을 가지는 자들입니다. 물론 제사장들은 성전 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지고 오는 제물을 받아 제사를 집례하고, 의식을 통해 성전과 공동체를 정결하게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병자들이 생겼을 때 다른 사람들은 다 부정하다고 멀리할지라도 제사장만큼은 그 병자들에게 다가가서 그들이 회복이 되고 다시 정결하게 되는 방법을 말해 주고 일러주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제사장의 관점에서 본다면 병도 치료도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병을 치료하는 분은 하나님이시고, 제사장은 단지 환자의 상태가 정한가 부정한가를 결정하는 역할만 수행하면서, 공동체와 성소가 거룩함을 유지하도록 하는 일에 힘을 쓰는 존재들입니다.
병자들이 부정하다고 해서 그들에게 다가가서 진단을 하지 않는다면 누가 그들에게 하나님의 치유하심과 회복하심을 전하며 다른 이들에게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우리는 사도 베드로가 우리가 어떤 이들인지 말씀한 그 말씀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에서는 우리의 역할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택하심을 받은 족속이요 왕과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민족이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어둠에서 불러내어 자기의 놀라운 빛 가운데로 인도하신 분의 업적을 여러분이 선포하는 것입니다."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우리를 왕과 같은 제사장이라고 명명하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 시대의 제사장입니다. 우리교회는 바로 이 제사장 나라인 것입니다. 그리고 제사장된 우리가 우리를 죽음에서 불러내셔서 빛 가운데로 인도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업적을 선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악성피부병에 걸려 죽음의 그림자 권세에 있는 이들에게 제사장된 우리가 가서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정결케 될 수 있다고 다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다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고 진단하고 정결을 선포하는 역할을 우리가 해야 하는 것입니다.
언제부턴가 우리교회에 전도하자라는 얘기가 사라진 것은 아닙니까? 영혼구원에 관심을 갖자라는 말들이 사라지지는 않았습니까? 여러분에게 한 번 묻겠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사명이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증거하려는 열정과 사명감이 있습니까? 어쩜 우리는 우리만 잘 먹고 잘 살면 되지 않겠느냐고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이나 제사장처럼 변질된 사역과 역할을 감당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구약시대의 제사장의 본연의 임무가 바로 부정과 정함을 선포했던 것과 같이 오늘 날 우리는 세상을 향해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선포하는 자들이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는 아직도 자신들이 정결치 못함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디트로이트에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이들이 우리 주위에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정결케 되는 것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가능함을 전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길 바랍니다. 2016년도 우리교회는 여기서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아직 우리 교회가 해야 할 일이 많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영혼구원입니다. 우리 주위에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이들을 향해 우리는 나아가야 합니다. 그들에 인생의 구원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음을 우리는 선포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