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일서 4:7-11(서로 사랑하십시오)
서로 사랑하십시오.
(요한일서 4:7~11)
개인적으로 목회를 하면서 정말 어려운 것이 있다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어려워도 너무 어렵습니다. 쉬울 것 같으면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 있다면 '사랑'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인지 성경에서도 이 사랑이라는 단어를 쓰는데, 중구난방식으로 씁니다. 아가페, 필로에, 에로스, 스톨게 등등....
철이 들기 전에는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이 사랑인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누군가를 좋아하고 있는 나를,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러시아의 문학가 톨스토이라는 분이 쓴 책이 있습니다. 지금 청소년들은 전혀 알지 못하는 책일 겁니다. 그러나 저희 세대는 너무나 잘 알고 읽었던 책이 있습니다. 바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책입니다.
이 책의 내용을 오늘 말씀과 많은 연관성이 있어서 간단히 소개해 봅니다.
한 마을에 가난한 구두장이 세몬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가진 돈과 빌려준 돈을 받아 신발을 만들 양가죽을 사기 위해 집을 나섭니다. 근데, 가진 돈은 얼마없고 빌려준 돈은 받지도 못하자 외상으로라도 양가죽을 사려 했지만, 살 수 없었습니다. 이에 속이 상한 세몬은 가진 돈으로 보드카를 사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집에 오는 길, 교회 근처에서 벌거벗은 한 청년을 만납니다. 거지라기에는 너무 깨끗한 얼굴의 청년을 한참을 보다가 그 벌거벗은 청년을 집으로 데리고 옵니다. 쇄약해져서인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잘 움직이지도 않는 청년은 세몬에게 자신이 신의 벌을 받아 이렇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양가죽을 사지도 못하고 술을 마신데다 청년까지 데리고 집으로 오자 아내인 그의 아내는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욕을 해 대지만 세몬의 설득에 식사를 차려 그 청년을 대접합니다. 이 두 부부의 모습을 본 청년은 미소를 짓습니다.
얼마 후 미하일이라는 이름의 이 청년은 구두고치는 일을 배워 세몬의 집에 많은 도움을 주게 됩니다. 1년이 지난 어느 날 한 덩치 부자가 집에 들어와 무례한 태도로 가죽을 맡기며 장화를 만들라고 말합니다. 미하일은 또 미소를 짓고 구두 대신 슬리퍼를 만듭니다. 세몬은 뜻밖의 일을 하는 미하일 때문에 두려웠지만 미하일을 믿기에 가만히 두고 보았습니다. 다음 날, 그 신사의 하인이 와서 부자가 죽었으니 장화 대신 슬리퍼를 만들어 달라는 말을 듣습니다.
다시 1년이 지난 어느날 어느 부인이 두 아이를 데리고 구두를 맞추러 오는데 미하일은 두 아이를 뚫어져라 봅니다. 세몬은 두 아이중 한 아이가 다리를 저는 것을 보고 그 부인에게 이유를 묻습니다. 이 아이들은 그 부인의 아이들가 아니라 과거 이웃의 아이들이며 고아가 된 것을 데려다 키운 것이었다고 말합니다. 또한 아이 엄마가 쓰러져 죽으며 한 아이를 덮치는 바람에 다리를 절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 이야기를 듣던 미하일은 두 아이를 보며 세 번째 미소를 짓습니다.
부인이 돌아가고 미하일은 자신의 죄가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받았다며 세몬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합니다. 자신은 과거 천사였는데 한 여자의 목숨을 앗아오라는 신의 명령을 거역해 벌을 받게 되었고 하나님께서 하신 세가지 질문에 답을 얻어야 하늘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세가지 질문이란 “사람의 내부에는 무엇이 있는가?”, 두번째는 “사람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마지막 세번째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였습니다.
미하일은 한번의 미소를 지을 때마다 하나의 질문에 답을 얻게 되었는데,
첫째, 인간의 내부에 있는 것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의 답을 미하일은 추위와 굶주림에 떨던 자신을 보살펴 준 세몬과 마트료나 부부 안에서 찾게 됩니다. 바로 사랑이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두번째는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의 답은 세몬의 구둣방에 부자가 찾아왔을 때 알게 되었습니다. 그 부자는 1년이 지나도 헤어지지 않고 실밥이 일어나지 않는 장화를 주문했지만, 그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죽을 때 신을 슬리퍼였다는 것입니다. 그는 돌아가는 길에 마차 안에서 죽게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미하일은 거기서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은 자신에게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지혜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인간에게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는 장면입니다.
마지막 세번재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라는 질문의 답은 6년 뒤 그 집을 찾아온 착한 부인에게서 미하일은 그 답을 알게 됩니다. 미하일은 6년전, 쌍둥이 딸을 낳은 한 여자의 목숨을 거두어 오라는 하나님의 명을 받고 영혼을 거두러 갑니다. 하지만 그 여자는 가련한 목소리로 애원했고, 미하일은 처음으로 여자의 청을 듣고, 차마 목숨을 거두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선 다시 한번 가서 영혼을 데려오기를 권합니다. 그 명령을 받은 미하일은 끝내 그 여자의 목숨을 거두게 됩니다.
미하일은 그 때 그 여자가 죽으면 남은 두 여자아이를 키워 줄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미하일이 데려간 그 여자의 쌍둥이 두 딸을 한 착한 부인이 애지중지하며 키워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미하일은 마지막으로 세번째 질문의 답을 알게 됩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질문의 답을 말입니다. 그 답은 사람은 자신의 계획과 고민과 생각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그 사람을 사랑해 주는 사람이 있어 그 사랑으로 산다는 것을 말입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오늘 성경 요한일서 4장 10절과 11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오늘 이 말씀에서 성도는 무엇으로 사는지에 대한 답을 보게 됩니다. 또한 성도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보게 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았을 것이라 생각합니까? 젊다고 해서 오래 남았고, 연세가 많으시다고 해서 얼마남지 않았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이 세상에 올 때는 순서가 있지만, 갈 때는 순서가 없습니다.
얼마전 슬픈 소식 하나를 들었습니다. 크리스마스 이브날 아틀란에 있는 아틀란타한인교회를 섬기시는 김정호 목사님의 아들이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합니다. 나이 스물 넷의 젊은 청년이었습니다.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한국시간으로 어제 30일 주일, 한국의 유명한 강사이신 황수관 박사께서 소천하셨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우리는 어느 누구도 우리의 삶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이 땅에서 천년만년을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주 짧은 시간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2012년도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날,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께서 이 땅에 우리를 보내신 이유에 대해 근본적으로 좀 알았으면 합니다. 왜 부부의 연을 맺게 하셨는지, 왜 자녀들을 우리에게 주셨는지, 왜 가족이란 공동체를 형성케 하셨는지, 왜 교회의 공동체를 우리에게 허락하셨는지 말입니다.
예배 드리라고, 전도하라고, 선교하라고 가족공동체를 허락하셨습니까? 교회공동체를 허락하셨습니까? 맞습니다. 믿는 자들이기에 예배드려야 합니다. 전도해야 합니다. 틀린 말 아닙니다. 근데, 신학적으로 신앙적으로 깊이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이 땅에 우리를 보내셨을 때, 죽어라 일만 하라고 전도나 선교나, 교회 세우는데, 열심만 내라고 보내셨을 것 같습니까? 하나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얼마전 저는 개인적으로 쓸개를 떼 버렸습니다. 3년동안 저를 이유도 원인도 모르게 괴롭혀 오던 것이었습니다. 수술을 하기 전, 이런 생각을 해 봤습니다. 내가 이 미국땅에 왜 왔는가? 무엇 때문에 목회를 하고 있는가? 도대체 나는 죽어라고 3년동안 무엇을 하였는가? 그리고 한 가지 결론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목회하라고, 이 교회 부흥시키라고, 그래서 올랜도에서 떵떵거리는 교회 만들어서 떵떵 거리는 목사되라고 주님께서 보내신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저는 단호하게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우리를 보내실 때, 사랑하면서 살라고 서로 즐거워하면서 살라고, 행복하게 살라고 보내셨습니다. 서로 사랑하라고 가족공동체를 주셨습니다. 서로 사랑하라고 교회공동체를 주셨습니다. 그 사랑이 넘쳐서 전도도 하고 선교도 하는 것입니다. 서로 피터지게 싸우라고 부부의 연을 맺어주신 것이 아닙니다. 서로 피터지게 물어 뜯어라고 교회공동체를 형성케 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나이스하게 다가오는 사람들에게는 참 잘 합니다. 그런데 조금만 상처를 내면 숨겨놓았던 발톱을 들어내고 자신이 당한 것 이상의 상처를 돌려주려고 합니다. 그렇게 살아서 행복하셨습니까? 더 아프지 않았습니까? 사랑하기 위해서는 이해하고 감싸주고 안아줌이 필요합니다.
우리 교회 성도님들 가운데서 정말 사랑이 많으신 분들을 보게 됩니다. 목회자로서 참 부끄러울 때가 한두번이 아닙니다. 목사인 나도 그렇게 사랑하지 못하는데,
성경말씀 고린도전서 13장 13절에 보면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믿음도 좋습니다. 중요합니다. 그리고 소망도 좋고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가 항상 같이 있어야 하지만, 그 중에서도 으뜸은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성도들에게 있어야 하는 것,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근데, 성도들 가운데 자신을 너무 감싸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에게 제가 묻습니다. 도대체 당신은 왜 자신을 너무 감싸냐고 말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그렇게 말합니다. 사랑을 받지 못해서 보호본능으로 그런다고 말입니다.
근데, 그것 아닙니다. 사랑을 받지 못해서가 아니라, 사랑을 줘 본적이 없어서 그런 것입니다. 사랑을 줘 본 사람만이 아픔을 참을 수 있습니다. 할키는 사람을 아픔으로 앉을 수 있습니다. 오늘 성경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근데, 이 말의 진의를 아십니까오늘 성경의 말씀을 잘 못 읽으면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서로 사랑하자는 것이 나도 사랑해 줄테니, 너도 나를 사랑해야 한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의 말씀을 조금 더 의역해서 말씀을 드리면 서로 사랑하자는 말은 '먼저 사랑하자'라는 말입니다. 조건을 내 걸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랑은 그냥 하는 것입니다. 니가 날 사랑해 주닌까 나도 널 사랑해 줄께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조건없이 이유없이 사랑하는 것이 바로 우리 성도들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이유입니다. 조건없이 먼저 사랑하는 것이 교회공동체를 형성하는 중요한 힘이 됩니다.
2013년도는 제발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일에 목숨걸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렇다고 해야 할 일을 하지 말고 놀아란 말이 아닙니다. 일이 사람을 앞서지 말아야 합니다. 제발 내꺼만 챙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소중한 만큼 다른 이도 소중합니다. 저 사람은 무조건 주는 사람이니까 나는 저 사람에게 안 줘도 돼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저도 많이 필요합니다. 없어서 죽겠습니다.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2013년도 서로 사랑하는 성도님들 다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