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64:1-11(하나님은 나의 피난처)
하나님은 나의 피난처
(시편 64:1~11)
10월 31일은 기념일로 지정된 날은 아니지만, 나름대로는 특별한 날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는 이 날이 국경일이나 기념일과 같은 특별한 날은 아니지만,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30년 전 한국의 유명 가수가 '10월의 마지막 밤'이라는 노래를 불러서 당시 젊은이들 사이에서 10월의 마지막 날에 대한 추억을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미국은 10월 31일을 국가 기념일은 아니지만, '할로윈데이'로 지키면서 하나의 문화형태를 만들었습니다. 역사적으로 10월 31일은 지금으로 부터 정확히 495년전 독일의 수도사였던 마틴 루터가 교황의 잘못된 교리에 반대하며 95개 항목의 반박문을 독일의 비텐베르크 성의 만인 성자 교회의 문 앞에 내 걸면서 종교개혁이 시작된 날입니다. 그래서 이 날을 기념하고자 교회는 10월 마지막 주일을 종교개혁주일로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10월 31일을 '할로윈데이'로는 기억하면서도 개혁교회의 뿌리가 시작된 종교개혁의 날로는 기억하지 못함에 대한 안타까움을 감출 수 없습니다.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킬 당시 유럽의 중심은 신성로마제국, 프랑스, 영국, 스페인 그리고 이탈리아였습니다. 전유럽의 막대한 권력과 부는 이들 몇몇 소수의 나라들에 의해서 좌우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1517년 당시 영국의 인구가 4백만, 스페인이 8백만, 프랑스가 1천 6백만, 이탈리아가 1천 2백만, 그리고 독일의 인구가 약 2천만 정도였습니다. 이들 나라 중 유독 신성로마제국의 구성원인 독일인들만이 아직 중앙집권적인 강력한 국가체제를 갖지 못하고 있었으며, 이를 이용한 로마 교황청은 국가주의와 민족주의의 열망속에서 강력한 통치기반을 확보한 영국이나 프랑스, 스페인보다는 상대적으로 간섭이 용이한 독일을 재정적으로 착취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루터가 '교황청의 면죄부 판매가 과연 적법한가?'에 의문을 제기했으며, 이에 대한 독일인들은 전적으로 루터를 지지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결국, 중세 말기 이후 산발적으로 터져나왔던 부패한 카톨릭 교회에 대한 전반적인 불신과 불평을 하나의 집약된 힘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개혁을 주도했던 마틴 루터도 그리 쉽게 종교개혁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종교개혁을 주도해 나가면서 수많은 살해 위협 속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그 어려움 속에서 여러번의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좌절될 때 그가 작사 작곡한 찬송이 바로 방금 우리가 불렀던 찬송가 585장입니다.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되시니"
개혁에는 반드시 어려움이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변해야 된다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저 지금 그대로가 좋다고 생각합니다. 속담은 아니지만, 속담같이 쓰이는 말이 있습니다. '구관이 명관이다.'라는 말입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전에 익숙해져 있던 것에서 새롭게 바뀌는 것이 싫다는 의미입니다. 그냥 이대로가 좋다는 뜻입니다. 괜히 바꿔서 힘들 필요가 뭐 있냐는 것입니다.
개혁이라고 말할 때 우리는 영어로 Reformation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 'Re-Form'한다는 말입니다. 'Re-Form'이란 'New-Form'이 아닙니다. 새로운 틀을 짜는 것이 아니라, 되돌린다는 의미입니다. 즉 본질을 잃어버린 것을 다시 본질로 돌아가게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그 분이 하신 일이 바로 Re-Form이셨던 것입니다. 주님은 새롭게 뭔가를 새창조하신 것이 아닙니다. 원래의 상태로 회복을 시키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New Creation되었다고 하기 보다 Re-Creation되었다고 합니다.
습관이 한번 들면 바꾸기가 쉽지 않습니다. 어떤 교회가 있었습니다. 이 교회는 50여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교회였습니다. 50년 동안 교회의 예배순서가 한번도 바뀐 적이 없는 교회였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부터 50년 전 예배순서와 예배방식을 그대로 쓰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2대 목사님께서 은퇴하시고 젊고 참신한 3대 목사님이 파송받아 오셨습니다.
새로운 목사님 오신 후, 교회 예배순서와 구조부터 변화를 시도했습니다. 근데 얼마 지나지 않아 교회에서 갈등이 생겨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오랜 시절 기존의 예배순서와 분위기에 젖어 있던 성도들이 변화된 예배를 반대하고 나선 것입니다. 급기야 이 교회는 지방 감리사의 중재하에 두 개의 교회로 나눠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습관이란 이렇게 무섭습니다.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한번 길들은 습관을 바꿀려면 정말 대단한 각오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왜 이 습관을 바꾸지 못하는 줄 아십니까?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 답은 간단합니다. 바로 두려움 때문에 그렇습니다. 인간은 원래부터 새로운 환경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이후, 에덴으로부터 쫓겨나면서 인간의 기억속에서 환경의 변화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창세기의 내용들을 자세히 읽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인간들이 하나님의 반대해서 그들이 제일 먼저 시작한 것이 성을 쌓는 일이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을 쌓아서 성 안에서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살겠다는 것입니다. 안정된 환경을 보장받고 싶은 것입니다.
최근에 제가 한국에서 소식이 닿는 사람들에게 미국으로 놀러 오라고 많이 이야기합니다. 특히 제가 가르쳤던 청년들에게 미국에서 와서 구경도 하고 조금 더 넓은 세상을 체험해 보라는 의미에서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이 청년들과 대화하면서 느끼는 것이 뭔지 아십니까? 쉽게 결정을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한국을 떠난다는 것 자체를 두려워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환경이 바뀌고, 삶의 모든 것을 바꾸어야만 한다는 것,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냥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켰다고 듣기만 했기에 그냥 그렇게 되었나 보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당시 교황의 말이 절대시되던 때에 교황과 당시 종교중심세력을 반대한다는 것이 뭘 의미하는 것이겠습니까? 바로 죽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 삶에 변화를 준다는 것은 죽음을 각오한 정신만이 바꿀 수 있는 것입니다. 혹시 저와 여러분은 우리 삶가운데, 우리의 신앙 모습가운데, 바꾸어야 할 것은 없습니까? 만약 있다면 죽음을 각오한 개혁을 해 가야 합니다. 또한 변화를 시도하면 두려움이 생깁니다. 여기 저기서 도전을 해 오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생각지도 않은 도전이 올 때,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마틴 루터가 죽음의 위협 속에도 불구하고 개혁의 기수를 높이 들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세상을 바라 본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을 의지한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그의 찬송에서 우리가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은 강한 성과 방패가 되심을 믿고 어떤 어려움과 환란이 닥쳐 와도 당당히 맞서 싸운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이 끝내 종교개혁을 성공적으로 일끌어 낸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무슨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까? 우리의 신앙생활은 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까? 혹시 이것이 아니다라고 생각하고 알고 있으면서도 쉽게 바꾸거나 고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없습니까? 어쩌면 우리가 바꿔야 하는데, 바꾸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두려움 때문인지 모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와 힘이 되신다고 말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 1절부터 3절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1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2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에 빠지든지
3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우리 앞에 놓여진 어떤 장애물도 우리를 넘어지게 하지 못합니다. 그 이유가 바로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요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다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두려워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가 당할 환란과 어려움 때문에 두려운 것입니까? 사실 깊이 생각해 보면 우리가 만날 환란이나 고통, 어려움 때문에 두려운 것이 아니라, 그러한 어려움, 환란이 닥쳐 왔을 때, 도움받을 때가 없기 때문에 두려운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요,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다라고 말입니다. 절대 다른 곳에 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어려움이 닥쳐 오고 생각지도 않은 일이 일어날 때, 사람 찾지 마시고, 물질로 해결할려고 하지 마시고, 주님께 엎드리시기 바랍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너무나 위로가 되는 말씀을 하십니다. 2절과 3절을 다시 읽어 보겠습니다.
2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에 빠지든지
3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오늘 2절과 3절의 상황을 네자로 이렇게 말합니다. '날리법석' 아무리 우리 삶에 '날리법석'이 일어난다할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 주님이 우리의 피난처요, 힘이시요, 도움이시기 때문입니다. 이번 한 주도 이 주님을 의지하고 사시는 한 주간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