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7:24-27(당신은 세금을 내십니까)
당신은 세금을 내십니까?
(마태복음 17:24~27)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반드시 국민으로서의 지켜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것을 대한민국 헌법에서 국민의 4대 의무라고 합니다. 요즘은 하나가 더 추가가 되어서 5대 의무로 불립니다. 여기 계시는 성도님들께서도 어렴풋이 국민의 4대 의무가 무엇인지 기억나실 것입니다. 첫째는 국방의 의무입니다. 대한민국 남성이면 일정한 나이가 되어 반듯이 군대에 가서 국방의 의무를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교육의 의무입니다. 교육은 권리가 아니라, 의무라고 규정을 한 것이 특이합니다. 모든 국민들은 일정기간 교육을 받아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국가발전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그렇다고 합니다. 세번째는 근로의 의무입니다. 국민들이 일을 하지 않는다면 개인은 물론이고 국가의 경제발전을 저해하는 것이기 때문에 개인의 능력과 적성에 맞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네번째가 납세의 의무입니다. 모든 국민들은 정해진 세금을 내야만 하고, 국민들이 내는 세금으로 나라 살림을 하는데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환경보전의 의무가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유대인들에게만 있는 아주 독특한 의무제도가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성전세 납부의 의무입니다. 성전세란 유대인 남자라면 누구나, 어디서 무슨 일을 하며 살든지 성전을 위해 일년 마다 은전 한 닢, 즉 반 세겔의 돈을 내어야 하는 것입니다. 유대인 계산법에 의하면 두 드라크마입니다. 팔레스타인 내에 사는 사람들은 물론이요,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 사람들도 선택된 백성에 속한다는 표시로서 이 의무를 다해야 했습니다. 또한 이 의무를 다하는 것을 그들은 특권으로 생각했습니다.
매년 유월절에 예루살렘을 방문할 때 이 성전세를 내도록 의무화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간혹 이 성전세를 내지 않는 사람들이 있으면 세금 징수자들이 가나안 지역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찾아 다니면서 성전세 부과했다고 합니다.
오늘 24절에 의하면 세리들이 가버나움 지역으로 세금을 걷기 위해 예수님과 제자들이 머무는 곳에 찾아 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성전세를 의논하기 위해서 예수님께로 갔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세금 이야기를 꺼내기도 전에 예수님께서 먼저 베드로에게 질문을 하시는 내용이 24-25절의 말씀입니다. 한번 보시겠습니다.
24 가버나움에 이르니 반 세겔 받는 자들이 베드로에게 나아와 이르되 너의 선생은 반 세겔을 내지 아니하느냐
25 이르되 내신다 하고 집에 들어가니 예수께서 먼저 이르시되 시몬아 네 생각은 어떠하냐 세상 임금들이 누구에게 관세와 국세를 받느냐 자기 아들에게냐 타인에게냐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로마의 식민지였기에 세 가지의 세금을 내어야만 했습니다. 첫번째는 로마당국에 내야 하는 세금입니다. 두번째는 헤롯왕에게 바쳐야 하는 세금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성전에 바쳐야 했던 성전세였습니다. 그래서 당시 유대인들이 감당해야 했던 세금이 이만저만 무거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로마황제든, 헤롯왕이든, 제사장이든 그 누구도 자기들이 정한 세금을 깎아주거나 면제해 주지 않았습니다. 부과된 세금은 반드시 내야 했고, 그렇지 않으면 재산을 압수당하거나 감옥에 가야 했습니다. 그러니 당시 백성들에게 부과된 세금은 그야말로 원망의 대상이요, 백성들의 고통의 근원이었습니다. 어쩜 지금의 우리 현실과도 다를 바 없었던 것 같습니다.
더구나 로마 당국이나 헤롯왕은 아주 교묘한 방법으로 세금을 거뒀습니다. 그들은 결코 백성들을 직접 상대하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 중에서 세리를 뽑아 그들에게 징수권을 주고, 목표액만 채우면 되게 했습니다. 예를 들어 로마 당국이 가버나움이라는 마을에서 1억 원의 세금을 거두라고 세리에게 명령하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그 세리가 거기서 얼마를 더 걷든지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세리는 능력껏 걷어서 정해진 것만 로마 당국에 내고, 나머지는 자기가 챙겨도 무방했습니다.
이렇게 세금을 거둘 때 그 세금을 자기 자녀들한테서 거두어 들이는 사람은 물론 없었을 것입니다. 단지 남들한테서 거둘 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성전세에 대해서 말하러 온 베드로에게 세금을 거두는 자들이 누구에게 세금을 걷게 되느냐는 질문을 하신 것입니다. 25절의 말씀입니다.
25 이르되 내신다 하고 집에 들어가니 예수께서 먼저 이르시되 시몬아 네 생각은 어떠하냐 세상 임금들이 누구에게 관세와 국세를 받느냐 자기 아들에게냐 타인에게냐
당연히 자녀들에게는 받지 않습니다. 지극히 당연한 대답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권력자도 자기 자녀한테서 세금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 남들한테서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26절의 말씀입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타인에게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렇다면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
이어서 27절의 말씀이 나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
오늘 27절의 말씀은 우리 기억속에 좀처럼 기억되지 못한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본문에서 이 기적은 핵심내용이 아닙니다. 오늘의 본문에서 핵심이 되는 것은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신 “자녀들은 세금을 면제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너무나도 당연한 말씀인 이 말씀, '자녀들은 세금을 면제받는다.'라는 말을 하신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의 가정에 혹시 자녀들에게 날마다 먹는 것과 자는 것과 입는 것에 대해서 가격을 메겨서 자녀들에게 일정한 돈을 내라고 하시는 분들이 있으십니까? 당연 없습니다. 자녀의 양육이라는 것은 응당 부모의 의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는 자녀들에게 먹는 것과 자는 것과 입는 것에 대한 대가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전 교육은 시킵니다. 나중에 이들이 자라서 부모에게 매달 $500씩 보내라고 말입니다. 이것 중요한 것입니다. 상수, 현진이, 민정이 그렇게 해야 합니다.)
여하튼 '자녀들은 세금을 면제받는다.'라는 당연한 말씀이 오늘 본문의 중요한 Key point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예수님의 두번째 수난예고 바로 다음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17장 22절과 2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22 갈릴리에 모일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23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매우 근심하더라
예수님은 예수님 자신을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한 제자들에게 두번씩이나 자신이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장차 예수님께서 당하셔야 할 십자가의 사건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 십자가의 사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셔서 이스라엘의 새로운 통치자로 서실 것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는지, 이 땅에서 예수님께서 무엇을 성취하시려 하시는 지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저 자신들이 예수님과 더불어 새롭게 세워질 새로운 나라의 통치가가 될 것을 꿈꾸고 기대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베드로의 고백이후, 계속해서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오늘 성전세에 대한 이야기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그 답은 26절의 말씀속에 있습니다. 다시한번 26절의 말씀을 함께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타인에게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렇다면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
여기에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자녀들은 세금을 면제받는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십자가란 무엇입니까? 로마시대 당시 죄인을 처형하던 방식 중의 가장 잔혹한 형태가 바로 이 십자가의 처형방법입니다. 죄를 지은 죄인들 가운데 죄질이 매우 나쁜 죄인들은 로마법에 의해 십자가 형틀에 못박아 아주 고통스럽게 죽어가게 했던 형집행법이었습니다.
근데 이 십자가와 오늘 예수님의 말씀인 '자녀들은 세금을 면제받는다.'라는 말씀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장 21절의 말씀을 함께 찾아 보겠습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뭐라고 합니까? 예수님의 탄생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장차 예수님이 무성을 하실 것이냐는 것을 말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뭐라고 합니까? 예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의 죄에서 구원하실 분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의 법도 어기면 대가를 반드시 치뤄야만 합니다. 사소한 속도 위반을 해도 벌금을 묻습니다. 우리가 저지르는 사소한 범죄에도 법은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합니다. 하물며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법 아래서 우리가 날마다 짓는 죄는 어느 정도의 대가를 치뤄야만 하겠습니까? 심지어 인류의 최초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의 범죄함으로 지은 죄는 오직 죽음으로 밖에는 지불할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간혹 사극을 보면 어떤 장군이 전쟁터에서 자신의 실수로 인해 패전을 하게 되면 그 패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죽음으로 자신의 죄를 대신하겠다고 왕 앞에 죄를 청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날마다 짓는 죄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죽음외에는 지불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란 바로 우리 죄에 대한 대가 지불을 생각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1장 22절에서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바로 자신의 백성들을 그 죄의 대가에서 구원하시겠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이 구절에 나타난 구원이란 의미는 구속과 속죄의 의미에 더 가깝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대가지불로 살려 준다는 의미입니다. 대신 죽음을 면제한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가 무엇을 의미하는 지 이제 이해되십니까? 예수님께서 짊어지신 십자가는 단순한 나무형틀에 달려서 죽으신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짊어지셨던 십자가는 사실 누가 짊어져야 하는 것입니까? 우리가 짊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원래 우리가 우리의 죄 때문에 우리 스스로가 짊어지고 그 십자가상에서 우리 죄의 대가를 죽음으로 지불해야만 했던 것이었습니다.
아담의 범죄함이후 우리 속에 흘러 넘치게 된 죄성으로 우리가 범죄했던 그 모든 것들을 우리가 십자가에서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십자가에서 우리 스스로가 치룰 수밖에 없었던 그 모든 죄의 대가를 면제해 주시는 사건이 하나 일어난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우리의 죄로 인해 죽을 밖에 없었던, 그리고 그 영원한 지옥형벌 속에서 고통을 받아야만 하는 상황속에서 우리의 죄가 면제가 되어진 것입니다. 무엇으로 인해 면제되어진 것인지 아십니까?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대신 짊어지신 십자가로 인해 우리의 죄에 대한 대가가 면제되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죽음에서 사면되어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의미입니다.
십자가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란 바로 우리의 죄가 사면되었음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선고되어진 형벌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면제되어진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우리 대신에 십자가를 지셨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짊어져야 할 십자가를 그분이 대신 졌기 때문에 이루어진 일입니다. 이로 인해 우리의 모든 죄가 사해졌습니다. 그리고 천국을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천국으로 아무 문제없이 출발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믿는자에게 하나님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특권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면제받은 성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 십자가의 일로 인해 또 다른 일이 하나 더 일어났습니다. 바로 우리의 신분이 변경된 것입니다. 저주받아 죄의 종과 사망에 그늘에 앉아있던 사형수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더 이상 죄의 권세 아래 있는 죽음의 자녀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상속권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일명, '신의 아들이 되었다'고 합니다.
웃으게 소리로 한국에서는 군대를 면제받은 사람들을 '신의 아들'이라고 부릅니다. 한국 청년들이 참 어려워하는 문제가 있는데 바로 병역의 문제입니다. 누구나 한번쯤은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군생활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기 때문에, 많은 젊은 청년들이 피해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군대를 면제받는다는 것이 그리 쉽게 되지 않습니다. 정말 어려운 조건이 있어야만 가능하는 것입니다. 아무나 쉽게 면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군복무를 면제받은 사람들을 보고 '신의 아들'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어떤 신분입니까? 예수님께서 십자를 통해 우리의 신분을 바꿔 놓으셨습니다. 바로 '신의 자녀들'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 이루어질 사건이 무엇인가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 예수님께서 지실 그 십자가로 인해 우리의 신분이 조정될 것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미국 땅에서 이민자로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신분 조정이지 않습니까? 하물며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신분의 조정을 받는 것입니다. 그 신분의 조정이 어디서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입니까? 바로 십자가입니다. 이 십자가를 바로 보고 믿을 때, 우리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에게 천국의 백성으로 거듭나고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이 조정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를 통해서 내 죄가 다 용서함 받고 천국을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 것이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죽는 그날까지 믿고 죽는 그날 하나님 앞에 이것 가지고 서게 되는 것입니다.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이 십자가를 생각하고 십자가의 복음을 붙들어야 하는 이유가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로 인해 우리의 신분이 변경되어졌기 때문임을 말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십자가를 믿을 때, 우리 모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음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복음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