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

마태복음 13:1-9(귀 있는 자는 들으라)

오비도제일장로교회 2020. 5. 7. 11:19

귀 있는 자는 들으라

(마태복음 13:1~9)

 

실제로 이런 일이 있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어서 소개합니다. 6.25가 끝나고 휴전 후 미군이 한국에 주둔하게 되었을 때, 미군 부대가 있었던 경상도의 어느 마을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합니다. 새벽기도를 마치신 어떤 할머니께서 집으로 돌아가시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때, 그 옆에 한 미군이 함께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평소 자주 만나는 얼굴이라 미군은 그 할머니를 보고 “Hello!”라며 인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마침 기다리던 버스가 오는 것을 본 할머니는 친절하게 그 미군에게 말했습니다. “(버스가)왔대이.” 그런데 이 미군은 그 할머니가What day(오늘이 무슨 요일인가)?”라고 묻는 줄 알고Monday(월요일).”이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자 이 할머니는 미군이 또 무언데?라고 묻는 줄 알고 버스를 가르키며, “버스대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그 미군은 할머니가Birthday(생일)."라고 말하는 줄 알고, ”Happy birthday to you!(생일 축하합니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제가 오늘 이 예화를 말씀드린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제 머리속에 떠나지 않는 생각이 하나 있었습니다. 이런 생각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사실 너무나도 뻔한 말씀입니다. 근데 왜 이 뻔한 말씀을 예수님께서는 굳이 해석을 덧붙여 가시면서까지 이야기하고 있는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여러 자료를 찾는 가운데, 어떤 분은 이런 말씀까지 하셨습니다. '본문의 말씀은 삼척동자도 다 알만한 내용이다.'

 

삼척동자도 다 알만한 내용을 왜 예수님께서는 굳이 해석까지 붙여 가시면서 말씀하고 있느냐라는 것이 저의 의문이었습니다. 오늘 날 우리는 말씀의 홍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교회를 다니는 신자라면 우리는 어디에서나 언제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 주위에는 너무나 많은 설교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TV를 틀면, 라디오를 켜면, 인터넷을 연결하면 24시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울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은, 이 시대, 하나님 말씀의 풍성한 선포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믿음과 그 믿음의 결과로 나타나는 삶의 변화는 어떠냐라는 것입니다. 우리 귓가에 들여지는 하나님의 말씀만큼 열매맺어지고 있느냐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그 말씀을 우리 마음대로 해석해 버리기 때문에 생겨나는 일은 아닌가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귀가 있지만, 들리기는 하지만, 우리에게 믿음의 소리로 들리는 것이 아니라, 오늘 날 선포되어지는 수많은 하나님의 말씀과 각종 성경공부, 세미나, 인터넷 성경강의 등 이 모든 것이 우리 귀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오히려 더 건성으로 듣게 만들어 버린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긴 들어도 그 말씀을 더 이상 믿음으로 받아 들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말씀을 듣지만, 우리 마음대로 자의적인 해석을 해서 우리 편한 대로 믿음생활을 하며 우리를 합리화시켜 버렸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그저 말씀일 따름이고 우리의 삶에 전혀 적용하지 못하는 삶을 살면서, 우리의 판단과 생각이 하나님 말씀 위에 서서 하나님의 강대상에서 선포되어지는 말씀을 듣긴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세대, 귀로 듣기는 하여도 이해하기를 포기한 세대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 귀가 있어도 잘 듣지 못하는 세대를 향해서 귀있는 자는 들으라고 선포하고 계신 것입니다. 오늘 마태복음 13장 전반부를 자세히 살펴보면 반복되어져 나오는 단어가 하나 나오는데, 그 단어만 보더라도 우리 예수님께서 무엇을 말씀을 하시고자 하시는지 금방 알 수가 있습니다. 바로 '듣는다'라는 단어의 반복입니다.

 

인간은 듣는 만큼 믿고 행동하게 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 말은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듣느냐에 따라 우리의 반응이 달라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특이한 것은 우리의 귀는 아무리 잘못된 정보라도 해도 자꾸 그 잘못된 정보를 듣다보면 어느 순간 그것을 진실인냥 그렇게 믿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믿는대로 행동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남에 대해서 잘못된 이야기를 계속 반복해서 다른 사람에게 말하게 되면, 그 사람은 처음에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다가도 어느 순간 그렇게 믿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잘 들어야 합니다. 무엇을 말하고 의미하는지 깨달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귀로 다 들었다고 해서 다 잘 들은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듣고도 정확하게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알아 듣지 못하면, 오해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이런 저런 크고 작은 소리가 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듣고도 오해를 불러왔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것은 잘 들은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잘못 들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귀가 있어도 잘 못 들으면 그 귀는 있으나마나 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복음을 듣고도 삶의 변화가 없다면 그것은 복음을 들은 것이 아닙니다. 여전히 듣지 못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오랜 시간동안 신앙생활을 했고, 교회를 다니면서 말씀을 들었다고 하지만, 믿음의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다면 지금까지 교회에서 들은 말씀은 들은 것이 아닙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듣는 훈련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듣는 훈련을 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의 믿음이 들음에서 시작하고 성장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로마서 10 17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들음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믿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을 통해 생동력있게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잘 듣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듣는 훈련을 통해 우리는 믿음의 결실을 맺을 수 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다 이루어졌습니다. 말씀하신대로 다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듣는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성취됨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말씀하심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음으로 기적과 역사를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잘 듣지 못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요? 간단합니다. 믿음의 역사를 가지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잘 듣지 못하기 때문에 믿음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의심이 생기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늘 마태복음 13 1~9절까지 나오는 씨뿌리는 비유에서, 길가, 돌밭, 그리고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앗들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공통점이 있는데, 다 믿음없을 말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다시말해, 불신앙과 의심많은 신앙모습을 말하고 있습니다. 18절부터 22절까지 함께 보겠습니다.

 

18 그런즉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

19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려진 자요

20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21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22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야고보 사도는 말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야고보서 16-8)

 

왜 우리가 믿음생활을 하면서 열매맺는 삶을 살지 못합니까? 그 열매가 우리의 신앙이든, 우리의 경제적 형편이든, 무엇이든 간에, 하나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리 마음의 불신과 의심이 생겨서 그렇습니다.

 

태초의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게 된 이유도 불신과 의심에서 시작이 되었습니다. 사탄과 마귀는 인간의 조바심을 충동질하여서 하나님을 불신하게 하고 의심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기도해 놓고도 금방 돌아서서 우리의 생각과 계획대로 할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도록 기다릴 줄 모르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 맡긴다고 말만 했지, 생각만 했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런 불신앙은 어디에서 온 것입니까? 평소 하나님 말씀을 들고 끝까지 기다리지 못한 불신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오늘 마태복음 13장의 이 말씀이 누가복음에도 함께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가복음 8 15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을 합니다.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우리가 지금까지 잘 못 오해하며 신앙생활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의 믿음은 무턱대로 믿거나 그냥 저절로 생긴다는 생각입니다. 우리의 믿음 성장은 절대 그냥 교회만 다닌다고 해서, 주일 한 시간 설교만 듣는다고 해서 생겨나지 않습니다. 우리의 믿음 성장은 들은 만큼 행동하는 것과 또한 기다림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대로 믿음으로 행동하고 또한 하나님께서 주신 우리의 비전이 반드시 성취될 것을 믿고 기다리는 인내가 있어야 우리 삶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냥 공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공으로 받는 것들이 있긴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과 죄 가운데서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구원받고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이후부터는 우리는 믿음의 훈련을 해야 합니다. 진정한 성도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들음의 신앙 훈련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믿음과 들음의 훈련을 통해 우리는 어떤 것은 100배의 열매를, 어떤 것은 60배의 열매를, 어떤 것은 30배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9절에 나오는 것처럼 100, 60, 30배 등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믿음의 훈련을 통해, 잘 듣는 훈련을 통해 우리의 삶에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잘 듣는 자는 반드시 열매를 맺는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개인과 가정, 사업장에 열매가 있어야 합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훈련을 하십시오. 그리고 그 말씀이 이루어질 때까지 인내로 기다립시오. 반드시 열매를 맺을 날이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