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강해

출애굽기 2:1-10(그 아이가 자라 민족의 지도자가 됩니다)

오비도제일장로교회 2020. 5. 7. 10:57

그 아이가 자라 민족의 지도자가 됩니다

(출애굽기 2:1-10)

 

신학교를 갓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은 목사님께서 작은 교회를 목회하고 계셨습니다. 어느 날, 주일학교 아이들에게 열정을 다해 천국에 관한 설교를 하고 계셨습니다. 그날따라 목사님의 설교에 집중을 하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내심 기뻐하고 있었습니다. 설교가 끝날 무렵 자신의 설교에 만족한 목사님께서는 아이들에게 묻었습니다.

 

"천국에 가고 싶은 사람은 손을 들어 보세요."

 

이 말을 들은 아이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 손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 가운데 유일하게 손을 들지 않은 한 아이를 보게 되었습니다. 기분이 약간 상한 목사님은 그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왜 천국에 가고 싶지 않은 거니?"

 

그러자 그 아이가 목사님께 대답을 합니다.

 

“네, 엄마가 예배끝나면, 집으로 곧장 오라 하셨거든요."

 

오늘은 가정의 달 5, 첫 번째 주일을 맞이하였습니다. 우리는 5월 첫째 주일을 ‘어린이 주일’로 지킵니다. 어린이 주일 맞아 오늘 말씀을 통해 믿음의 부모로서 우리 자녀들에게 어떠한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우리 자녀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며 양육해야 하는지 깨닫기를 원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마지막 날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자식을 주셨습니다. 창세기 5장에 보면 아담의 족보가 나옵니다. 아담이 셋을 낳고 셋이 에노스를 낳고 에노스는 게난을 낳고 게난은 마할랄렐을 낳고 마할랄렐은 야렛을 낳고 야렛은 에녹을 낳고 에녹은 므두셀라를 낳고 므두셀라는 라멕을 낳고 라멕은 노아를 낳습니다.

 

그리고 창세기 11장에 보면 노아는 다시 세 아들을 낳게 되는데, 셈과 함과 야벳을 낳습니다. 노아의 아들들 가운데 셈은 아르바삭을 낳고 아르바삭은 셀라를 낳고 셀라는 에벨을 낳고 에벨은 벨렉을 낳고 벨렉은 르우를 낳고 르우는 스룩을 낳고 르우는 나홀을 낳고 나홀은 데라를 낳고 데라는 아브람을 낳습니다.

 

여기까지가 아담부터 아브라함까지 20대에 걸친 족보입니다. 그리고 창세기 12장부터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시작해서 그의 아들 이삭, 그리고 그의 아들 야곱, 야곱은 장차 이스라엘 12지파를 형성하게 될 그의 아들들, 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 , 납달리, , 아셀, 잇사갈, 스불론, 요셉, 베냐민을 낳습니다.

 

여기서 흥미있는 것을 하나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삭의 아들들 가운데 에서가 아닌 야곱을 통해 이스라엘 민족을 형성케 하였는가라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히브리서 11 8-9절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 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9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 것 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뭐라고 그럽니까? 아브라함이 이삭과 야곱과 더불어 한 장막에서 같이 살았다고 합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에서가 아닌 손자 야곱과 함께 한 장막, 여기서 장막이라는 단어가 라틴어 성경에는 “Tabernaculorum”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어디서 많이 본 단어 아닙니까? “Tabernaculorum”

뭐 입니까? 영어의 “Tabernacle”입니다. 즉 성소입니다. 하나님의 임재 장소인 성소입니다. 바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한 성소에서 같이 신앙생활을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야곱의 나이 15세까지 아브라함이 한 장막에서 같이 살고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1세대의 믿음이 어떻게 전수되어지는 지 알 수 있습니다. 야곱이 이스라엘이 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야곱이 15세가 될 때까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철저하게 신앙교육을 시켰고, 야곱은 조부 아브라함의 신앙교육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 창세기는 야곱의 마지막 인생과 그의 아들 요셉의 이야기로 마무리하면서 창세기 마지막 50장을 야곱의 온 가족이 이집트로 들어가게 된 이야기로 마무리합니다.

 

창세기 후반부에 나오는 야곱의 온 가족들이 어떻게 이집트로 이주하게 된 이야기가 흥미롭습니다. 간단히 말씀을 드리면 야곱의 사랑하는 아내 라헬이 낳았던 첫 째 아들인 요셉을 편애함을 통해 다른 형제들이 시기해서 미디안 상인들에게 팔아 넘기게 됩니다. 결국 요셉은 미다안 상인들에 의해 이집트의 노예로 팔려 가게 됩니다. 근데 하필 팔려간 곳이 이집트 바로를 근접거리에서 호위하는 경호실장에게 팔리게 됩니다.

 

노예로 팔려간 요셉은 호위대장 보디발의 집에서 또 한 번의 어려운 일을 당하게 됩니다. 보디발의 아내와의 불미스런 일로 인해 옥고를 치르게 됩니다. 요셉의 잘못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보여준 요셉의 모습속에서 우리는 생각하게 됩니다. 어떻게 요셉이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을 갖게 된 것인가를 말입니다.

 

창세기 39 7-10절을 함께 보겠습니다.

 

7 그 후에 그 주인의 처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 

8 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처에게 이르되 나의 주인이 가중 제반 소유를 간섭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임하였으니 

9 이 집에는 나보다 큰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 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 뿐이니 당신은 자기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10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뭐라고 그럽니까? 요셉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지금 요셉의 나이가 몇 살입니까? 17살의 나이입니다. 어떻게 아직 청소년 시기에 이런 믿음을 가질 수 있었습니까? 그것은 요셉이 이집트로 팔려 가기 전 요셉은 이삭과 함께 17년을 같이 살았습니다. 그리고 이삭은 자신의 말년에 요셉을 그의 무릎 위에 놓고 신앙교육을 했던 것입니다.

 

여기서도 우리가 알게 되는 교훈이 있습니다. 신앙교육은 반드시 전승되어진다는 것입니다. 또한 어렸을 신앙교육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해 줍니다. 훗날 노예로 팔렸던 요셉은 우리가 잘 아는 데로 당시 거대한 제국인 이집트의 넘버 투(2)인 국무총리가 됩니다.

 

이로 인해 창세기 46장에서 야곱은 그의 온 가족들을 데리고 이집트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야곱의 자손들은 드디어 이집트에서 400여년 이라는 시간을 보내면서 엄청난 규모의 숫자로 불어나게 됩니다. 그 수가 얼마나 많고 큰 민족을 이루었는지 출애굽기 1 7절과 9절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7절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이 중다하고 번식하고 창성하고 심히 강대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9절 그가 그 신민에게 이르되 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보다 많고 강하도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언약이 드디어 성취되었음을 보게 됩니다. 창세기 15장에서 약속하신 대로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하늘의 별과 같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번성케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번성하게 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위기가 닥칩니다. 그 옛날 이집트를 태평성대하게 만들었던 장본인이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 이스라엘 백성들을 견제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먼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려운 일들을 가중시켜서 그들의 육체의 고통을 더하게 합니다. 그것도 모자라서 이집트 왕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번성을 막기 위한 조치를 하나 내립니다. 이스라엘 여자가 출산할 때에 산파들을 보내어 태어나는 아이가 여자면 살리고, 남자면 죽이게 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일도 제대로 되지 않자, 이제는 아예 이스라엘 여자들이 아이들을 출산해서 만약 남자 아이가 태어나면 강가에 버리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이러한 비참한 현실 속에서 레위 족속 중에 한 사람이 레위 여자에게 장가들어 한 아이를 낳았습니다. 이 여자는 자신이 낳은 아이가 너무 아름다워 석달간 몰래 키우다가 더 이상 자신이 키울 수 없게 되자 아들을 버릴 생각을 합니다.

 

근데 오늘 본문을 통해 이 아이의 어머니의 믿음이 정말 대단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아이의 어머니는 비록 아이를 버려야 하는 처지에 처했음에도 끝까지 아이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지 않음을 봅니다. 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더 숨길 수 없이 되매 그를 위하여 갈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하고 아이를 거기 담아 하숫가 갈대 사이에 두고

 

뭐라 그럽니까? 아이를 그냥 포기한 것이 아니라 끝까지 하나님께서 그 아이를 살려 주실 것이라는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 아이의 어머니는 갈 상자를 만들어서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해서 강가에 이 아이를 띄었을 때, 빠지지 않게 한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더 살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아이의 엄마는 이 아이를 그냥 강가에 떠 내려 보내지 않았습니다. 아이를 갈대상자에 담아 물에 쓸려내려 가지 않게, 갈대 사이에 잘 끼워 두었습니다. 그런데 갈대 상자를 끼워 둔 장소가 어디인지 아십니까? 5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바로의 딸이 목욕하러 하수로 내려오고 시녀들은 하숫가에 거닐 때에 그가 갈대 사이의 상자를 보고 시녀를 보내어 가져다가

 

이집트 왕의 딸이 목욕하러 나오는 장소입니다. 이 아이의 어머니는 치밀한 준비를 한 것입니다. 자신의 아들을 구해 줄 수 있는 자로 당시 권력자의 딸인 공주를 생각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아이의 어머니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면 반드시 바로의 딸이 자신의 아들을 구해줄 것이라는 확신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로의 딸, 공주의 마음을 감동시키셔서 자신의 아들을 살려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진정한 믿음입니다. 이런 믿음이 있을 때, 기적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기적은 아무 때나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다운 믿음을 우리가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에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6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열고 그 아이를 보니 아이가 우는지라 그가 불쌍히 여겨 가로되 이는 히브리 사람의 아이로다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집트 공주가 이 아이를 보는 순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생긴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왕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도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잠언 21 1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보의 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

 

하나님께서 이집트 공주의 마음에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기적과 은혜를 언제 베풀어 주시느냐하면, 우리가 최선을 다해 준비해 놓고 우리가 할 수 없는 것들은 하나님께 맡겨 놓게 될 때, 기적과 은혜는 베푸십니다.   

 

그리고 이 아이의 어머니는 이집트 공주의 마음속에 긍휼함이 생긴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이 어머니가 얼마나 철저했는지를 보면, 자신의 딸을 이집트 공주가 목욕하는 곳 근처에 이미 대기시켜 놓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기회가 왔을 때 그 기회를 확 붙듭니다. 7-9절의 말씀입니다.

 

7 누이가 바로의 딸에게 이르되 내가 가서 히브리 여인 중에서 유모를 불러다가 당신을 위하여 이 아이를 젖 먹이게 하리이까 

8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가라 그 소녀가 가서 아이의 어미를 불러오니

9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이 아이를 데려다가 나를 위하여 젖을 먹이라 내가 그 삯을 주리라 여인이 아이를 데려다가 젖을 먹이더니

 

잃어버렸던 아이를 다시 찾게 되는 순간입니다.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섭리와 기적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믿고 준비하는 자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10절을 보겠습니다.

 

그 아이가 자라매 바로의 딸에게로 데려가니 그의 아들이 되니라 그가 그 이름을 모세라 하여 가로되 이는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 내었음이라 하였더라

 

방금 읽었던 그 아이가 누구입니까? 모세입니다.

 

그리고 모세의 이야기가 2 11절부터 다시 시작이 됩니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11절에 나오는 모세는 이미 장성한 성인의 모습으로 나옵니다. 이 때 나이가 벌써 40입니다. 그런데 바로의 궁에서 자란 모세가 40이 되었을 때, 이미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해 있었다고 성경은 증거합니다. 히브리서 11 24-25절입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뭐라 그럽니까?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고 칭함받기를 거절했다고 합니다. 근데 문제는 어렸을 때부터 이집트 왕궁에서 자란 모세에게 어떻게 이스라엘의 신앙교육이 이루어졌느냐는 것입니다. 그 근거가 바로 오늘 본문 10절에 있습니다. 다시 10절을 보겠습니다.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그 아이가 자라매 바로의 딸에게도 데려가니

 

지금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이 9절에서 바로의 공주로부터 젖을 먹이라는 명령을 받은 후 언제까지 키우게 됩니까? 젖땔 때까지입니다. 모세의 나이가 5-7살 때까지 그의 어머니 요게벳이 모세를 키운 것입니다.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이 모세를 젖먹이면서 어떻게 키웠을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이스라엘 교육: 어머니 교육, 쉐마 이스라엘>

 

지금까지 야곱도 그랬고, 요셉도 그랬고, 모세 역시도 어렸을 적, 부모나 혹은 조상들로부터 신앙의 가르침과 전수가 있었기 때문에 위대한 인물로 하나님 앞에 쓰임받을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어머니로부터 신앙교육을 철저히 받았던 모세가 자라 민족의 지도자가 됨을 보게 됩니다. 모세의 신앙교육은 아주 어렸을 적부터 시작된 조기교육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깊이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바로 4-14 Window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앞으로 이 땅의 지도자로 세워지기 위해서는 다른 어떤 것보다 어렸을 때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앞으로 이 미국의 희망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앞으로 하나님 나라의 소망입니다. 이들에게 하나님의 성령이 부어지고, 이들이 마지막 때에 유일한 희망입니다. 어린이주일을 맞아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신앙교육을 시켜야 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또한 지난 주 우리교회가 확정한 교육관 증축사업이 우리에게 이 마지막 시기에 주는 주님의 도전이길 믿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