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7:1-8(예수, 그 황홀한 만남)
예수, 그 황홀한 만남
(마태복음 17:1~8)
오늘 본문 마태복음 17장의 전장인 16장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예수님 자신이 누구신지를 물으시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예수님의 이 질문에 제자들은 각자 자신의 생각과 다른 이들로부터 들은 내용을 이야기합니다. 혹자는 세례요한, 누구는 엘리야, 누구는 예레미야,
어떤 이들은 선지자들 중에 하나라고 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이 때 베드로가 말합니다. 우리 함께 고백해 보겠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 고백이 있은 후 예수님 자신을 둘러서 있는 제자들에게 장차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3일에 다시 살아나야 한다고 하신 첫 번째의 수난예고를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그 일이 있은 후 6일이 지났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다고 합니다. 1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여기서 높은 산은 지정학적으로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약 22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산이라고 합니다. 성경학자들이 추정하기로는 갈릴리 북쪽으로 헐몬산이라는 산이 있는데 이 산이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 산은 해발 2814m나 되는 높은 산입니다. 우리 나라 한라산의 높이가 1950m가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얼마나 높은 산인지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산위에서 제자들이 보는 가운데 변화의 영광을 나타낸 것입니다.
예수님의 변형된 얼굴과 그 옷이 얼마나 광채가 났는지 오늘 본문과 동일한 내용으로 기록한 마가는 마가복음 9장 3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희어졌더라
이 세상의 어떤 세탁기도 그렇게 희게 빨 수가 없었다라는 말입니다. 이 세상의 어떤 세탁소들도 그렇게 깨끗하게 세탁을 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본 베드로가 너무나도 놀랍고 황홀해서 자신도 모르게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여기 이대로가 좋다고 합니다. 여기 이대로 만족한다고 합니다. 이대로 모든 것이 끝나도 좋다고 상관없다고 말을 합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한 그 변화의 순간이 얼마나 좋았으면 자신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도 모르면서 감격의 말로 취해서 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지금까지 신앙생활하시면서 이런 감격과 황홀함에 빠져 본 경험이 있으신 분이 계십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가 너무나도 좋아서 그냥 이 상태로 천국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시냐는 것입니다. 간혹 간증하시는 분들 간증을 들어보면 이런 말씀을 하는 것을 종종 듣게 됩니다. 아마도 이런 감격과 황홀함을 경험해 본 분들만이 오늘 베드로의 고백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우리가 날마다 드리는 예배에 이런 감격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드리는 우리의 찬양속에, 우리가 부르짖는 우리의 기도 속에 이런 감격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2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특이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오늘 본문과 같은 내용을 기록한 누가복음에는 오늘 본문 2절의 말씀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9장 29절을 함께 찾아 보겠습니다.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누가복음 9장 29절에는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났다」고 이야기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언제 하나님의 영광을 맛볼 수 있는지 아십니까? 기도할 때입니다. 기도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기도할 때, 우리의 용모가 변화되는 체험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다른 이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러 시내산 위에 올라갔을 때, 그 얼굴에 광채가 나게 된 것을 보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기도밖에 없습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만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는 것입니다. 기도만이 우리를 변화시키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만이 우리의 환경을 바꿀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본문 3절을 보시면
「그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이거늘」이라 말씀합니다.
그런데 재미난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같은 내용을 기록한 누가복음에서는 조금 다르게 적고 있는데요. 누가복음 9장 32절의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베드로와 및 함께 있는 자들이 깊이 졸다가 온전히 깨어나 예수의 영광과 및 함께 선 두 사람을 보더니
거기에 있었던 세 제자들이 어떻게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주님과 함께 기도하던 중에 깊이 잠들었다고 합니다. 너무 피곤한 나머지 졸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들은 졸다가 갑자기 예수님의 영광과 예수님과 함께 선 두 사람 곧 모세와 엘리야를 보았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졸아도 은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졸아도 하나님의 영광을 맛볼 수 있습니다. 근데 졸긴 졸는데 장소가 중요합니다. 집에서 멍때리다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졸아도 장소가 좋으면 은혜 받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맛보게 됩니다. 어디입니까? 그렇습니다. 교회입니다. 주님이 계시는 곳입니다. 주님이 함께 하는 곳에서 졸아도 졸아야 합니다.
조는 한이 있더라도 교회에서 졸면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조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 나와 앉아 있어도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전도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그냥 교회가서 졸더라도 교회가서 졸자고 데리고 오셔야 합니다. 그리고 와서 앉아있다보면 무슨 소린지 몰라서 늘 졸더라도 때가되면 졸다가 은혜받습니다.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읖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교회 나와서 6개월만 앉아 있으면 은혜받습니다. 전도하시기 바랍니다.
근데, 오늘 본문 3절을 보니까 에수님께서 모세와 엘리야와 더불어 말씀을 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신 것인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저는 두번 죽을 뻔 했습니다. 첫번째는 궁금해 죽는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두번째는 이 해답을 찾고 나서 가슴설레여서 죽는 줄 알았습니다. 처음에는 궁금해서 죽는 줄 알았고, 답을 찾고 나서는 가슴설레여서 죽을 뻔 했습니다. 누가복음 9장 31절의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30절부터 봅니다.
30 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라
31 영광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새
누가복음 9장 31절에 「영광 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새…」라고 하였습니다. 모세와 엘리야는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었다고 합니까? 예수님의 별세를 대해서 의논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별세라는 단어가 무슨 의미인지 아십니까?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출국(Exodus)에 대한 말입니다. 영어 성경을 가지고 계시는 분들은 보시면 압니다. 뭐라고 되어 있냐면 별세라는 말이 ‘Departure’로 되어 있습니다.
쉽게 말씀을 드리면 별세라는 단어는 모세가 애굽에서 자기 백성을 이끌고 약속의 땅을 향해 이집트를떠날 때 사용된 출애굽이라는 Exodus와 같은 의미의 단어입니다. 즉 별세(Exodus)라는 단어는 지상에서 천국으로의 ‘출국’을 말하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도 훗날 자신의 죽음을 이야기할 때, 이 변화상의 일을 기억하면서 죽음대신에 떠남이라는 단어를 그대로 사용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모방해서 말한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1장 15절을 함께 찾아 보겠습니다.
내가 힘써 너희로 하여금 내가 떠난 후에라도 어느 때나 이런 것을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And I will make every effort to see that after my departure you will always be able to remember these things.
그렇다면 모세와 엘리야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가 이 세상을 떠나 천국으로 떠날 출국을 이야기하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이미 예수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말씀하신 대로, 자신이 예루살렘에 올라가 많은 고난을 당하고 십자가에 죽을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변화산의 영광 중에 나타낸 모세와 엘리야의 대화의 주제는 바로 엑소도스(Exodus) 곧 예수님의 출국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자기 백성을 저희 죄 가운데서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의 대속의 죽음을 감당하신 후, 예수님 자신이 무덤에서 부활하고 승천하심으로 그의 모든 백성을 이 세상에서 천국으로 출국시키실 것을 예시하신 것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골로새서 1장 13-14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함께 찾아 보겠습니다.
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14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다시 말하자면 십자가를 통한 예수의 출국(Exodus)은 곧 이 세상(사망)에서의 우리의 출국(Exodus)을 위함이란 것입니다. 그 출국(Exodus)의 문이 바로 십자가인 것입니다. 더 엄밀히 말씀을 드리면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 우리의 출국의 심사대라는 것입니다.
오늘 마태복음 17장의 변화상 이야기는 바로 십자가의 의미가 무엇이며, 예수님의 십자가지심이 장차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게 되는 것인지를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란 단순히 우리의 죄를 속량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고통가운데 짊어지신 나무조각이 아니라, 예수님의 이 십자가의 사건이 바로 우리가 천국으로 출국할 수 있는 자격과 조건을 가지게 된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는자들은 반드시 이 십자가를 통과해야만 한다고 지난 주 설교를 통해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단순한 죄사함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모세가 홍해가 갈라져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함으로 이끈 것과 같은 구원의 길을 여신 사건인 것입니다. 그래서 홍해의 이야기는 기적이야기가 아니라 구원의 이야기라고 제가 여러번 강조를 한 것입니다.
여러분 이 미국을 오실 때 어떻게 오셨습니까? 출국심사와 함께 이 미국의 입국심사를 다 거쳐서 오셨을 것입니다. 이 심사대에를 통과하지 못하면 우리는 출국할 수도 없고 입국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가야할 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땅을 떠날 출국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입국 심사가 되는 십자가가 우리에게 반드시 있어야만 합니다.
십자가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냐고 말하시면 안 됩니다.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 지심이 있었기에 그 분안에서 내가, 우리 가족이, 사랑하는 아내와 남편이, 자녀가, 주님과 함께 출국심사 및 입국심사를 끝내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사도바울은 너무나 놀라워서 그저 비밀이라고 말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비밀이며, 하나님의 놀라우신 구원의 능력의 비밀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오늘 이 놀라우신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깨달아야만 합니다. 우리가 천국으로 출국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십자가의 심사대를 거쳐야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바로 십자가 앞에서의 우리의고백입니다.
마태복음 16장 26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우리 주님의 십자가 외에는 그 어떤 것도 나를 천국으로 인도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의 십자가가 있었기에 나와 내 가정이 산 것입니다. 여러분 이 귀한 십자가를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정말 두렵도 떨리는 마음으로 내가 받은 구원을 지켜 가시길 바랍니다.
십자가는 죽을
수밖에 없는 나를, 나의 그 어떤 공로나 노력으로는 내 죄를 사할 수 없는 나를 위해 우리
예수님께서 이루신 놀라운 은혜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나의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