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4:13-21(풍성케 하시는 예수님)
풍성케 하시는 예수님
(마태복음 14:13~21)
어느 시골 작은교회에 수줍음이 많기로 소문난 집사님이 계셨다고 합니다. 수줍음은 많았지만 누구보다도 열심히 기도하며 봉사하는 집사님이셨습니다. 어느 날 속회 식구들과 함께 이웃봉사활동을 나갈 기회가 있어 함께 봉사활동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모든 봉사가 마친 후 속회원들과 모여 합심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근데 합심기도를 끝낸 후 봉사활동을 인도하신 다른 집사님께서 이 수줍음이 많은 집사님께서 마무리 기도를 시키셨습니다. 이 집사님은 떨리는 가슴으로 마음을 가다듬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랑의 주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 집사님의 기도가 간절하고 은혜롭게 마무리되는 듯 했습니다. 그런데 너무 긴장해서 그랬는지, 기도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렀을 때 이 집사님은 그만 ‘예수님의 이름을 기도드립니다'라고 하는 구절의 ‘예수님’이라는 이름이 갑자기 생각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잠시동안 침묵의 시간이 흘렸습니다. 함께 기도했던 속회원들도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 그저 "주여, 주여" 라고만 말하고 있을 때 이 집사님께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습니다.
"... 그 때 그 물위를 걸으신 그 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오늘 말씀을 나누기 전, 성도님들께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여러분 각자가 머리속으로 제가 드리는 질문에 답을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굳이 말씀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질문 드리겠습니다. 성경은 구약과 신약으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구약과 신약 가운데, 구약의 내용을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무엇이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그리고 신약의 내용을 또한 한 문장으로 말씀하신다면 무엇이라 정의하시겠습니까?
아마 쉽게 답변하기 어려우실 것입니다. 그 이유는 여러분이 성경말씀인 신약과 구약 66권에 대해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오랫동안 성경을 읽어 오셨고 목사님들을 통해 많은 말씀을 들으셨기 때문에 성경에 대해 잘 알고 있으실 겁니다. 그런데 왜 이 질문에 선뜻 대답을 못하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성경말씀을 누가 어떤 관점에서 이야기하느냐에 따라 그 답이 다양하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늘 말씀도 그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은 먼저 구약과 신약의 내용을 먼저 정의하고 들어가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데로 구약은 쉽게 말씀을 드려서 하나님이 누구신가에 대해 묻고 답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하나님이 무엇을 행하셨는지,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마음이 어떤 것인지 등등,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과 기적, 또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떻게 사랑하셨는지를 통해 하나님이 이런 분이시구나를 알리려 하는 것이 구약입니다. 따라서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구약은 바로 하나님은 누구신가에 대한 답을 하고 있는 책이다라고 생각하시면 된다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신약은 무엇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까? 그렇습니다. 여러분께서 생각하신 데로 바로 예수님에 대한 내용입니다. 이것을 좀 더 자세하게 정리를 해서 한 문장으로 말씀을 드린다면 신약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다라는 것을 말하는 책입니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모든 내용들이 하나같이 예수님이 누구신가라는 질문을 하고 그 질문에 대한 답으로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과 신약을 합쳐서 다시 정리를 해 드리면 이렇게 정의할 수 있습니다. 구약은 하나님은 누구신가에 대한 질문을 하고 있고 신약은 그 하나님이 바로 예수님이시다라는 것을 답하는 책이라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이 점을 꼭 기억하면서 성경을 읽어 가야 성경이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지 바른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그냥 무턱대고 읽어서는 안 됩니다. 만약 이런 기초적인 생각을 가지고 성경을 읽지 않으면 성경 말씀을 읽다가 삼천포로 빠질 우려가 있습니다.
1960년대 부산을 출발하여 진주로 가는 기차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새마을운동의 결과 우리나라에 고속도로나 국도들이 많이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지금은 부산을 출발해서 진주로 가는 기차가 없어졌다고 합니다. 부산을 출발해서 진주로 가는 기차가 없어지기 전까지 기차를 타고 진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부산에서 출발해야 했다고 합니다. 근데, 부산에서 진주로 가는 기차에는 진주로 가는 손님만 타는 것이 아니라 삼천포로 가는 손님도 함께 그 기차를 탔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진주로 가는 손님과 삼천포로 가는 손님이 함께 기차를 타고 부산을 출발하여 계양역이라는 곳에 도착하게 되면 그제서야 비로소 진주행과 삼천포행의 객차로 분리하여 운행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부산에서 출발하게 된 기차는 출발할 때는 첫 번째 차량 앞에 진주행이라고 쓰여져 있지만 마지막 차량의 이름은 삼천포로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기차가 계양역에 도착했을 때 반드시 안내방송을 통해 진주행 손님과 삼천포행 손님은 각각 옮겨 탈 것을 알려 주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부산에서 진주로 가는 손님들은 계양역까지 가는 길이 짧은 시간은 아니었기 때문에 가는 동안 사람들은 기차 안에서 술을 마시거나 잠들어 있다가 정작 계양역에 도착해서 미처 기차를 갈아 못해서 엉뚱하게 진주가 아닌 삼천포로 빠지게 되는 경우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생긴 말이 '삼천포로 빠진다.'라는 말이라고 합니다.
성경을 읽다가 보면 적지 않은 성도들이 이 삼천포로 빠질 수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이 그런 경우 중에 하나입니다. 다시 말해 오늘 본문 내용을 가지고 기적에 초점을 맞추어 보게 될 때 바로 삼천포로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오병이어의 이야기, 즉 보리떡 다섯 개와 작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만 무려 오천명 이상을 먹이신 이 이야기는 누구나 할 것 없이 잘 알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어려서부터 주일학교를 다니신 분들이라면 귀가 따갑도록 들었던 성경말씀 중에 하나이었을 것입니다.
1970년대까지 우리나라의 보릿고개가 극복되기 전까지 당시 많은 성도들에게 향수처럼 느껴지게 했던 말씀, 못 먹고 굶주리며 살던 시대에 예수님께서 보잘 것 없는 보리떡 다섯 개와 작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여명을 먹이신 이 기적의 사건은 어려운 시절 우리에게 절대적인 희망과 꿈을 가져다 준 성경 말씀 중에 하나였습니다. 이 말씀을 읽었던 성도들은 예수님께서 우리 가정에도 기적을 베풀어 주셔서 밥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날을 주실 것을 실락 같은 희망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게 했습니다. 바로 그 말씀이 오병이어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래서 주일하교 학생들도 제일 많이 듣고 배우게 되었던 성경이야기인 것입니다. 더구나 오병이어의 말씀은 믿지 않는 사람들도 예수님의 기적들 가운데 기억하고 있는 이야기 중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적잖은 성도님들이 오늘 본문의 오병이어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저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기적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 주일 설교말씀에서 마태는 세례요한의 죽음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살펴 보았습니다. 그게 무엇이었습니까? 세례요한의 죽음을 통해서 또한 예수님께서 고향인 갈릴리에서 배척당하신 것을 통해서 사람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이 아니라고 부인하고 싶어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다라고 역설하고 있는 내용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많은 설교자들이 오늘 본문을 가지고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기적이야기로만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오병이어의 설교를 들으면서 제일 많이 듣게 되는 내용이 오병이어와 같은 기적이 우리 삶속에도 일어날 수 있으니, 더 열심히 기도하라고, 더 봉사하고, 더 섬겨라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 문제를 가지고 나가기만 하면 다 해결받는다는 말씀을 듣습니다. 물론 이런 내용의 말씀이 틀린 것이 아닙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제가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것은 오늘 날 말씀의 홍수 속에서 있는 우리에게 수많은 메시지들 가운데 정작 중요한 메시지를 빼고 비본질적인 것만을 강조하는 말씀을 들을 때마다 아쉬움을 금할 수 없다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오늘 본문 말씀도 자칫 우리의 시각을 다른 방향을 돌려 읽게 되면 보잘 것 없는 보리떡 다섯 개와 작은 물고기 두 마리를 통해 일어난 기적을 보며 우리도 우리가 가진 작은 것을 주님께 드릴 때 기적이 일어난다라는 물질에 관한 의미로 받아 들일 수 있게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근데, 과연 오늘 이 오병이어의 이야기가 물질에 관한 이야기나 단순히 예수님께서 엄청난 기적을 일으키셨다는 것만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결론적으로 말씀을 드린다면 오늘 본문의 말씀도 지난 주일날 말씀을 드린 것과 같이 기적이야기를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 기적을 일으키신 분인 예수님이 도대체 어떤 분이신지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을 마태 외에도 마가, 누가, 요한이 똑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근데 특이한 점은 요한이 기록한 오병이어의 이야기가 다른 복음서인 마태, 마가, 누가복음과 조금 다른 엔딩을 가지고 있음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함께 찾아 보겠습니다. 요한복음 6장 14절의 말씀입니다.
그 사람들이 예수의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이 말씀을 새번역으로 다시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사람들은 예수께서 행하신 표징을 보고 "이분은 참으로 세상에 오시기로 된 그 예언자이다" 하고 말하였다.
요한복음 6장 14절에서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행하신 표징을 보고 말합니다. '이분은 참으로 세상에 오시기로 된 그 예언자이다.' 예수님의 오병이어의 표징, 요한복음에서는 기적이라고 하지 않고 표징 혹은 표적이라 말합니다. 여하튼 예수님의 이 표징을 통해 사람들은 예수님을 자신들이 기다렸던 메시야다라고 고백하는 말입니다.
자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지난 주 마태복음 13장 후반부에서 갈릴리 사람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으려고 애써 노력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 일이 있고 난 직후 예수님은 다시 갈릴리 바다/호수 근처에서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역사상 가장 뛰어나고 중요한 인물이 둘 있습니다. 누구이겠습니까? 아브라함과 모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아브라함과 모세는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은 이스라엘 나라를 존재케 한 그들의 뿌리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모세는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시킨 장본이자 구세주와 같은 자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 기억속의 모세는 두 번 다시 있을 수 없는 메시야와 같은 절대적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이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출애굽한 이후, 40년 광야의 시간이 지나 가나안 땅 근처에 도착해서 광야 2세대인 이스라엘 백성에게 마지막 고별설교를 할 때 그 때 말씀한 내용이 있습니다. 신명기 18장 15절에 있는 말씀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중 네 형제 중에서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너를 위하여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를 들을찌니라
자 이 말씀도 새번역본으로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주 당신들의 하나님은 당신들의 동족 가운데서 나와 같은 예언자 한 사람을 일으켜 세워 주실 것이니, 당신들은 그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말씀을 기초로 해서 현재 로마로부터 박해를 받고 있는 자신들을 언젠가 애굽에 있었던 자신들의 조상들을 구원해 준 모세와 같은 제2의 모세인 메시야가 나타나서 구원해 줄 것이라는 메시야 사상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에서 사람들이 예수님의 표적을 보고 놀란 이유가 뭐라 그럽니까? 자신들이 그렇게 기다리던 그 선지자가 예수님임을 확신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기다리던 메시야임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오병이어의 표적이 모세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너무나도 귀에 익숙한 장면을 연상케 한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었겠습니까? 바로 40년 광야 생활동안 그들의 일용할 양식이었던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게 한 기적을 오늘 예수님께서도 똑같이 일으키신 것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예수님을 자신들이 기다리던 메시야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마태 역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을 먹이신 이 예수님이 바로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이신 하나님이시다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지금 계속해서 마태는 마태복음을 기록하면서 무엇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입니까? 예수님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왕이시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기다리던 전능하신 하나님이 이 땅에 오셨음을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능한 신이신, 이 세상의 모든 만물과 우주를 창조하신 그분이 이 땅에 인간의 몸으로 오셨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고 이 세상의 어떤 철학과 과학도 예수님의 성육신을 부정할 수 없는 확실한 증거를 우리에게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지난 주일 여러분에게, 우리가 교회를 다니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리가 교회에 매 주일 나오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물었습니다. 우리가 매 주일 교회에 나오는 이유가 단지 조국 대한민국으로부터 이억 만리 떨어진 미국, 이 이민 사회에서 한인들과 어울리기 위해 교회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만약 우리가 교회에 나오는 것이 그저 Social Club을 생각해서 모이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반드시 우리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 질문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신앙의 대상이 누구이며, 우리의 신앙의 대상이신 예수님은 어떤 분이시냐라는 물음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 있는 한, 우리가 호흡하고 있는 한 우리는 항상 그 질문에 반드시 답을 해야만 합니다.
여러분에게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우리의 신앙의 대상은 누구이십니까? 만약 예수님이 우리의 신앙의 대상이라고 고백하신다면 그렇다면 예수님은 누구이십니까? 그 예수님이 나와는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왜 예수님이 하나님되심이 나에게, 우리에게, 우리교회에 중요한 것입니까? 왜 예수님이 내 삶의 주인이 되시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까? 결론부터 말씀을 드린다면 예수님이 하나님이 되시기에 우리가 그분께 모든 것을 믿고 맡길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이 되신다는 믿음없이는 우리의 삶을 그 분께 맡길 수가 없습니다.
여전히 우리가 세상적인 것들을 놓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다음에 나는 말씀 속에서 물위를 걷게 된 베드로가 다시 물 속에 빠졌을 때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책망하시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무슨 의미이십니까? 믿는다고는 하지만, 믿는다고 교회를 다니지만 실은 의심한다는 것입니다. 불신을 하던지, 믿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삶에 문제가 일어나는 것이 왜 그런 것입니까?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지 못하니까 문제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정말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는다면 우리의 삶, 전체를 맡길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신앙이고 이것이 믿음입니다.
물에서 베드로를 건져 내신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가르쳐 주고 싶었던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라라는 것입니다. 세상 염려 근심 걱정 다 버리고 그 분께 모든 고민과 걱정거리를 맡기라는 것입니다. 믿어 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정도, 우리의 물질문제도, 우리의 건강문제도, 다 예수님께 맡겨 보라는 것입니다. 그 분께 모든 것을 맡길 때, 그분이 하나님이심을 믿게 될 때 기적을 맛볼 수 있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그 분 안에 모든 것이 있습니다. 그분을 떠나서는 절대 우리의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없습니다. 그분만이 우리가 가진 문제의 해결이 되십니다. 예수님만이 전능하신 하나님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찬양이 있습니다. '전능하신 나의 주 하나님'이라는 입니다. 가사만 한번 불러 드리겠습니다.
전능하신 나의 주 하나님은
능치 못하실 일 전혀 없네
우리의 모든 간구도, 우리의 모든 생각도
우리의 모든 꿈과 모든 소망도
신실하신 나의 주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괴로움 바꿀 수 있네
불가능한 일을 행하시고
죽은 자를 일으키시니
그를 이길 자 아무도 없네
주의 말씀 의지하여 깊은 곳에 그물 던져
오늘 그가 놀라운 일을 이루시는 것 보라
주의 말씀 의지하여 믿음으로 그물 던져
믿는 자에겐 능치 못함 없네
이 찬양의 가사처럼 놀라운 일들이 나에게도 일어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믿음입니다. 무슨 믿음입니까?
예수님이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믿는 믿음입니다. 여러분은 이 믿음을 가지고 신앙생활하십니까?
예수님만이 참 하나님되시며 우리의 구세주가 되심을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기적을
맛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