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스 강해

아모스 7:1-9(도고기도, 하나님의 뜻을 돌이키게 하는 성도들만의 능력)

오비도제일장로교회 2020. 5. 6. 03:55

도고기도, 하나님의 뜻을 돌이키게 하는 성도들만의 능력

(아모스 71-9절)


 

감사절기 잘 보내셨고 보내시고 계시는지요? 오늘 말씀을 전하기에 앞서 여러분에게 제 마음을 먼저 나누고 오늘 본문의 말씀을 함께 나누길 원합니다.

 

저도 인간인지라, 목사이기 이전에 한 가정의 남편이고 자녀들의 아버지이고, 누군가의 아들이며, 동생이며 오빠입니다. 가끔은 성도님들을 만나 심방하고 그들의 삶을 듣고 나누다 보면 자신들의 삶 가운데 힘겨워 하는 분들을 종종 보게 됩니다.

 

그럴 때면 주님께서 주시는 위로의 말씀을 통해 힘을 얻게 하고 다시 소망을 가지게 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또한 어느 성도들은 어려운 형편에서도 열심으로 살면서 교회를 위해 수고하고 애쓰는 분들을 보면 정말 주님이 기뻐하시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준비하던 설교를 뒤집어서라도 격려의 말씀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습니다.

 

그런데 올 한 해 주님께서는 저에게 계속해서 같은 메세지를 부어 주십니다. 회개와 금식, 중보기도에 대한 말씀이십니다. 회개를 촉구하고 우리의 믿음을 다시 돌아보게 하고, 정말 우리가 믿는 자로서 잘 살고 있는지, 주님 오심을 준비하는 순결한 신부로서의 삶을 살고 있는지를 저에게 전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이런 말씀을 나눌 때마다 쉽지 않습니다. 제가 이렇게 쉽지 않으시는데, 여러분들은 오죽하시겠습니까?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분명 오늘 이 말씀도 들어야 하는 누군가가 있기에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라 믿습니다. 하나님은 이 마지막 때에 한 영혼이라도 더 깨어나서 주님의 나라에 들어 가길 원하십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한 영혼이라도 더 거듭나고 주님의 복음에 반응되는 역사가 일어나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제목을 한 번 따라 하시겠습니다. “도고기도, 하나님의 뜻을 돌이키는 능력

 

실은 더 정확하게 제목을 말씀드리면 “도고기도, 하나님의 뜻을 돌이키는 성도들만의 능력입니다. 회개가 왜 하나님의 뜻을 돌이키는 성도들만의 능력이 되는 것입니까? 왜냐하면 세상 사람들과 우리 믿는 자들의 차이가 여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세상 사람들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세상 사람들의 기도에 관심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오직 구원받은 자들의 기도에만 귀를 기울이시고 관심을 가지십니다. 믿으시면 아멘!

 

그래서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다릅니다. 한 번 따라 하겠습니다. 우리는 믿는 구석이 있다.” . 그렇습니다. 우리는 믿는 구석이 있습니다. 힘들어도, 내 생각대로 잘 풀리지 않아도, 우리는 절대 낙망하거나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는 이유가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내 기도를 들으시는 누가 있기 때문입니까? 하나님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여하튼 간에 신학적으로 하나님의 속성을 말할 때, 물론 제가 자주 말씀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우리 인간이 하나님에 대해서 논의하거나 연구할 수 있다? 없다? .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서 논의한다든지 연구를 한다든지 심지어 하나님에 대해서 그 어떤 것도 생각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다 죄인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안다라거나 하나님을 알 수 있다라고 말하는 말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어불성설이라고 여러 번 말씀드렸습니다.

 

왜냐하면 죄인된 인간이 감히 절대주권자이신 하나님을 알려 하거나 하나님을 파악하려고 하는 것 자체가 불손한 행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 인간이 하나님을 알기 원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이 땅에서 자신들의 지식과 자신들의 생각대로 살다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지옥가도 하나님은 괘념치 않으십니다.

 

하지만 주의 택한 백성들에게는 다른 마음을 가지고 계십니다.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셨는데, 이 구원받은 자들이 하나님을 제대로 알 지 못해서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죄를 짓다가 망해서 지옥가는 것을 정말 싫어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게 하나님의 본성이십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아모스 선지자와 동시대의 북이스라엘의 선지자인 호세아는 이렇게 말합니다. 호세아 61-3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함께 찾아 보겠습니다. 구약 1261쪽입니다.

 

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2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 삼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

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 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지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호세아가 말합니다. 주님께서 회복시켜 주실 것인데, 회복시켜 주시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이 있다고 말합니다. 뭡니까? 1절에서 말씀합니다. ‘여호와께로 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 이 여호와께로 돌아가자라는 말이 무엇입니까? 따라하겠습니다. 회개

여호와께로 돌아가는 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이 뭐 대단한 결단이나 뭐 대단한 의지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것은 간단합니다. 바로 회개하면 됩니다.

 

그런데 2절에서 뭐라고 말씀합니까? 우리가 회개하고 돌아가면 주님께서 주시는 은혜가 무엇이라고 합니까? 따라하겠습니다. 그 앞에서 살리라 뭐라고 말씀합니까? 우리가 산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3절에서는 다시 망하지 않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데 이게 중요합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따라하겠습니다. 힘써 여호와를 알자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망하지 않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우리 인생이 망하지 않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지옥가지 않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자녀가 망하지 않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우리 자녀가 지옥가지 않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3, 4, 5대 예수 믿는 집안이라고 안전하다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성경 요한복음 173절에서 분명히 말합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저는 개인적으로 목사 가정의 자녀이기 때문에 자동으로 천국간다고 생각하지도 않지만, 우리 자녀에게 그렇게 가르치지도 않습니다. 목사도 하나님과 예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지옥갑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소망이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에게만은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은혜의 통로를 열어 놓으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모르고, 그 말씀을 풀어주고 가르쳐 줘도 깨우치지 못합니다. 하지만 구원하시기로 작정한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어졌을 때 반드시 반응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초신자라고 해서 나중에 반응하고, 교회에 나온지 얼마되지 않았기 때문에 깨닫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평생 예수 믿지 않다가 오늘 이 시간에 나와서 처음으로 말씀을 듣는다 해도 그가 선택받는 자라면 하나님의 말씀이 그를 깨웁니다. 그를 변화시킵니다. 그에게 구원을 선물로 주십니다.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여러분은 말씀을 듣고 반응이 일어나십니까? 말씀을 배우면서 변화가 일어나십니까? 만약 그렇다면 여러분은 구원받은 자가 맞습니다. 할렐루야!

 

여하튼 간에, 일반적으로 기독교 교리 가운데 하나님에 관해 성경이 말하는 바를 정리한 내용을 신론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기독교 신론 가운데서도 또 특별히 하나님의 고유한 성품, 혹은 속성을 정리한 부분이 있습니다. 여기 하나님의 속성 가운데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시는 속성 가운데 이런 속성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변함없으심입니다. 이것을 신학적 용어로 하나님의 불변성, 혹은 불가변성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무슨 의미냐, 하나님은 절대로 자신의 뜻을 바꾸시거나 포기하시거나 변개치 않으시는 분이다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 하나님의 속성을 뒤집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건 신학적인 해석으로는 결코 해결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닙니다. 단지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절대적인 선택이라고 밖에는 말씀을 드릴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 말씀에 우리의 희망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절대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마음을 바꾸셨다면 도대체 무엇이 하나님의 속성과도 부딪혀 가면서 바꾸게 했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돌이키게 하는 방법을 우리가 안다면 우리도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될 때, 하나님의 뜻을 돌이키게 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지금 1절의 말씀이 무엇이냐면 하나님께서 이제 이스라엘을 심판하시기를 작정하셨다는 내용입니다. 더 이상 하나님께서 참지 않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심판의 내용이 무엇이냐면 이스라엘의 추수시기에 메뚜기떼를 보내셔서 추수할 곡식을 싹 쓸어버리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물론, 이 말씀은 정말 메뚜기떼를 보내서 먹을 것을 없애 버리시겠다고 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다른 나라를 일으키셔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시겠다는 상징적 의미를 말하는 것입니다. 여하튼 오늘 아모스 7장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아모스에게 장차 이스라엘을 심판하시겠다는 세 가지 환상을 보여 주시는 내용입니다. 그 가운데 첫 번째 환상이 방금 본 1절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런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말씀을 듣자마자 아모스가 한 행동은 무엇이었습니까? 2절의 말씀입니다.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지금 심판하시겠다고 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아모스가 하는 행동이 무엇입니까? 따라 하겠습니다. ‘도고기도

 

지금 아모스는 심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자마다 무릎부터 꿇기 시작합니다. ,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문제에 직면했을 때 무엇부터 하십니까? 누군가의 오해를 받거나 누군가로부터 마음의 상처를 받게 되면 무엇부터 하십니까? 하나님께 기도부터 하십니까? 똑같이 다른 사람들처럼 욕하고 자신이 받은 상처와 아픔을 돌려주고자 하십니까?

 

여러분!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달라도 한 참 달라야 합니다. 우리 믿는 자들의 문제해결방식은 세상 사람들과 달라야 한다고 우리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믿는 자들의 문제해결 방식은 다른 어떤 것이 아니어야 합니다.

 

우리 믿는 자들의 문제해결 방식은 그 문제를 능히 해결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를 먼저 생각하기에 앞서, 또한 나와 얽혀 있는 문제의 시시비비를 가리기에 앞서, 믿는 자들은 하나님 앞에서 그 문제를 내어놓고 무릎 꿇는 것이 먼저이어야 합니다. 믿으시면 아멘!

 

그런데 이게 쉬운 일이겠습니까? 쉽지 않습니다. 생각지도 않은 일들과 어려움과 환경 앞에서 무릎을 꿇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 쉽지 않습니까? 우리는 말로만 믿는다고 했지, 정말 구원받은 자의 삶을 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문제들을 직면했을 때 그 문제 앞에서 기도로 해결해 본적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또한 그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차분히 기도하며 기다려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아모스는 지금 무엇부터 하고 있습니까? 도고기도입니다. 그런데 오늘 아모스의 도고기도 내용이 특별합니다. 2절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뭐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따라하겠습니다. 용서하소서 무엇입니까? ‘회개입니다.  

 

아모스는 이스라엘을 심판하시겠다는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습니다. 어떻게 부르짖습니까? ‘야곱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잘 몰라서, 아직 어려서 저들이 죄를 짓고 실수하고 있다고 그래서 이해해 달라고, 하나님께 이스라엘 백성들을 용서해 달라고 간청을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누군가를 위해 이렇게 기도해 본 적이 있습니까? 우리 자신에게 잘못을 하고 돌팔매질을 하는 이들을 향해, 분노하고 원망하기 보다, 오히려 저들이 몰라서 그런다고 저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해 보신 적 말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신앙생활해 오면서 교회는 오래 다녔는데, 누군가를 용서하는 것은 아예 생각하지도 못하고, 나에게 조그만 실수를 해도 참지 못하고, 분노하며 앙갚음하려고 하지 않았습니까?

 

한 번 더 말씀드립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달라야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분명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의 오른 뺨을 때리면 돌려 대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오늘 아모스처럼 이런 기도를 해 본 적도 없으면서 말로만 주님 닮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주님을 위해 목숨까지도 내어 놓겠다고 고백하지 않았습니까? 물론 고백하지 않은 것보다야 나은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둘 다 가짭니다. 말로만 주님을 따른다고 하는 것은 가짭니다. 우리 주님을 진정을 따르는 제자, 진정으로 구원받은 자들은, 자신의 유익과 자신의 명예, 자신의 명성에 조그만 해가 간다고 해서 버럭하지 않습니다.

 

우리 주님은 십자가에서 자신을 못박은 자들을 향해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저희가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쌔(23:34)

 

그런데 이 아모스의 기도에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키십니다. 3절의 말씀입니다.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뭐라고 하십니까? ‘주님께서 이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셨다라고 말합니다. 이게 신학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내용이라는 말입니다.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불변하시는 하나님께서, 마음을 한 번 정하시면 절대 바꾸시는 법이 없으시는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바꾸셨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하나님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속성과도 상반되는 행동을 하게 한 것일까요? 따라 하시겠습니다. “도고기도

 

이 일로 인해 정말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열왕기하 1519-20절 말씀 강해)

 

사랑하는 여러분! 도고기도는 믿는 자에게 어떤 능력을 가져다 줍니까? 따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돌이키게 한다.”

 

도고기도는 절대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의 마음도 바꾸는 능력의 기도입니다. 그런데 도고기도할 때 첫 번째로 해야 하는 기도내용이 무엇입니까? 따라 하겠습니다. 회개

 

우리가 도고기도할 때 제일 먼저 해야 하는 기도는 회개기도이어야 합니다. 회개기도부터 하지 않으면 아무리 우리가 밤을 새워 도고의 기도를 한다할지라도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듣지 않으십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에 대해 진노하실지라도 회개의 기도를 하면 우리 주님은 반드시 용서하시고 회복시키십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어떤 회개기도를 해야 할까요? 그리스도인들의 회개는 개개인의 죄와 허물을 용서받기 위한 기도이기도 해야 하지만, 또한 우리가 속한 공동체의 죄와 허물을 자신의 죄와 허물같이 여기고 철저하게 회개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또한 죄를 범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죄로 인식하지 못하고 여전히 죄 가운데 있는 이들을 대신해서 도고해 주는 기도이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면서 여러분에게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오늘 말씀을 생각하면서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고 함께 회개하길 원합니다. 최근 들어 카드라통신을 많이 듣는 것 같습니다. 혹여 우리 가운데서는 사실과 상관없이 한 번 말해 보고 아니면 그만이다라는 식의 무책임한 말 한마디가 너무 쉽게 내뱉어지고 있지 않았습니까? 근거도 없는 얘기를 사실인냥 이야기하고, 설사 그 것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덮어주기 보다 들추어내어 개인의 가십거리로 만들고 있지 않았습니까?

 

우리 교회의 작은교회 공동체인 속회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속회로 모일 때, 우리는 신앙의 양심을 가지고 모이고 있습니까? 기독교인으로서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분별하고 있습니까? 먹지 말아야 할 것을 분별하고 있습니까? 내 가정의 남편과 아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내 마음에 품고 있지는 않았습니까? 우리는 주님 앞에 진정으로 회개해야 합니다.

 

이런 회개가 없이 어떻게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우리 가운데는 정의로운 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정의의 잣대를 가지고 어떤 문제를 심판하자고 합니다. 좋습니다. 틀린 말씀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교회의 방법은 없는 것입니까?

 

자신의 정의의 잣대와 방법으로 해결하면 다 해결되는 것입니까? 만약 그 방법이 교회의 방법이고 그리스도인의 해별방법이라고 생각하고 계신다면 성경을 잘못 알아도 한참을 잘 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 예수님께서도 우리를, 우리가 가진 정의의 잣대로 심판하려 하셨다면 여기서 살아 남아 천국갈 사람이 몇분이나 있겠습니까? 단 한명의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문제의 해결을 위해 정의의 잣대가 아니라 도고기도하십시다. 그리고 그 도고기도는 나부터 회개하는 회개의 기도이어야함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