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16:1-14(비참한 인간과 하나님의 은혜)
비참한 인간과 하나님의 은혜
제가 어렸을 적에 어머니으로부터 가끔 듣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특히 어머니께서 말씀하신 것들을 잘 듣지 않았을 때면 늘 잔소리처럼 하시던 말씀이셨습니다.
“눈도 못 뜨던 거 키워놨더니 머리 위에 오를라카네. 볼티를 학마!” (설명)
이 말을 전문적이고 세련되게 고쳐 말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개구리 올챙이적 기억 못한다.”라고 말합니다.
오늘 에스겔 16장의 내용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이 참아 오늘 본문의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인가라고 의심이 될 정도로 너무 민망하고 부끄러운 내용이기에 강대상에서 함께 읽기도 쉽지 않은 내용들입니다. 16장의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하면 이런 내용입니다.
버려진 한 여자 아이, 태어나자마자 부모의 돌봄을 받지 못하고 버려져 죽어가던 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길 가던 어떤 이가 발견하고 그 여자 아이를 정성스럽게 키웁니다. 그리고 훗날 그 아이를 왕후의 지위까지 오르게 만듭니다. 하지만, 그녀는 다른 남자들과 온갖 음행을 다 저지릅니다.
심지어 자신의 음욕을 주체하지 못하고 아무 남자와 음란한 행위를 함으로써 보다 못한 이 여자의 남편이 그 여자의 음란한 행위와 부끄러운 수치를 사람들에게 밝히 드러내겠다고 하는 내용입니다.
물론 여러분들도 짐작하시는 바와 같이 이 여자는 ‘이스라엘 백성’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 여자가 저지른 음란한 행위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저지른 우상숭배에 대한 내용입니다. 이들이 저지른 우상숭배 행위가 어떤 것이었는지 오늘 본문 에스겔 16장 15-19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15 그런데 너는 네 아름다움을 믿고, 네 명성을 의지하여, 음행을 하였다. 지나가는 남자가 원하기만 하면, 누구하고나 음행을 하여, 네 이름을 그의 것이 되게 하였다.
16 너는 네 옷을 가져다가, 가지각색의 산당들을 꾸미고, 그 위에서 음행을 하였다. 이런 일은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17 너는, 내가 네게 준 나의 금과 은으로 만든 장식품들을 가져다가 남자의 형상들(바알신상)을 만들어 놓고, 그것들과 음행을 하였다. (예레미야 11장 17절과 19장 5절 찾아 보기)
18 너는, 수 놓은 옷을 가져다가 그 형상들에게 입혀 주고, 내가 준 기름과 향을 그것들 앞에 가져다 놓았다.
19 또 너는, 내가 너에게 준 음식 곧 내가 너를 먹여 살린 고운 밀가루와 기름과 꿀을 그것들 앞에 가져다 놓고, 향기 나는 제물로 삼았다. 네가 정말로 그렇게 하였다.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저지른 일들은 하나님께 역겨운 일이라고 오늘 에스겔 16장 2절 말씀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이블타임 에스겔 16장 2절의 말씀을 다시 함께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람아, 너는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그들이 얼마나 역겨운 일을 저질렀는지를 알려 주어라.
그런데 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보시기에 이 극악하고 역겨운 일들을 저지른 것일까요? 15절에서 말씀합니다.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그런데 너는 네 아름다움을 믿고, 네 명성을 의지하여, 음행을 하였다. 지나가는 남자가 원하기만 하면, 누구하고나 음행을 하여, 네 이름을 그의 것이 되게 하였다.
뭐라고 합니까? 자신의 아름다움을 믿고, 자신의 명성을 의지하게 되었기 때문에 죄를 짓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게 무슨 소리입니까? 바로 ‘교만해졌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음부터 잘 난 자들이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음부터 강대한 나라였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음부터 부했던 나라였습니까?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원래는 이방 사람 취급받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조상이었던 아브라함은 이민자의 삶을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원래 노예였던 자들이었습니다. 이집트에서 430년간이나 사람취급도 제대로 받지 못했던 노예신분이었습니다. 또한 자신들의 땅은 한 뼘도 없던, 그저 유랑자나 다름없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런 이스라엘의 원래 모습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말해 주십니다. 3-5절의 말씀입니다.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3 이렇게 말하여 주어라. '나 주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두고 말한다. 너의 고향, 네가 태어난 땅은 가나안이고, 네 아버지는 아모리 사람이고, 네 어머니는 헷 사람이다.
4 네가 태어난 것을 말하자면, 네가 태어나던 날, 아무도 네 탯줄을 잘라 주지 않았고, 네 몸을 물로 깨끗하게 씻어 주지 않았고, 네 몸을 소금으로 문질러 주지 않았고, 네 몸을 포대기로 감싸 주지도 않았다.
5 이 모든 것 가운데서 한 가지만이라도 너에게 해줄 만큼 너를 불쌍하게 여기고 돌보아 준 사람이 없다. 오히려 네가 태어나던 바로 그 날에, 사람들이 네 목숨을 천하게 여기고, 너를 내다가 들판에 버렸다.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3-5절 강해)
무슨 소리입니까? 철저하게 부모로부터 버림받고 살 소망도 없고 절망 속에서 죽어가는 이들이 이스라엘 백성이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들이 그들의 지난 날을 잊어 버린 것입니다. 자신들이 처음부터, 태어날 때부터 잘 났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원래부터 자신들은 모든 것이 부족한 것이 없이 태어난, 아주 부유한 사람이었다고 착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돌봐주고 키워준 은인을 잊어 버린 것입니다. 이것을 사자성어로 “배은망덕”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있습니까? 현재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어느 순간 우리의 과거를 잊어버리고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원래부터 우리의 모습이 지금의 모습이었던 것처럼 우리의 과거를 잊은 채, 개구리가 올챙이적 시절을 잊어 버리고 살듯 우리 역시 교만되게 행하고 있지 않습니까?
원래 우리는 어떤 존재였습니까? 우리는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죄인이었습니다. 뼈속까지 죄인인 죄인이었습니다. 희망도 없고, 소망도 없고, 그저 사형선고를 받은 죄인처럼 무의미하게 살던 우리 자신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느 날 우리에게 누가 찾아 와 주셨습니까? 희망도 소망도, 내일의 바람도 없이 살던 우리에게 우리 주님 찾아 와 주신 것 아닙니까? 우리 주님이 찾아 와 주셔서 우리의 소망이 되어 주시고, 우리로 하여금 살 소망을 갖게 해 주신 것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는 이제 이만큼 살만하니 하나님은 어디 간데 없고, 우리의 힘으로, 우리의 능력으로, 우리의 아름다움으로 이렇게 된 것처럼, 하나님께서 더 이상 내 삶에 간섭하시거나 참견하시기를 원치 않고 잊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찾아 오셔서 예전처럼 나랑 같이 걷자고, 나와 같이 시간을 보내자고 하시면, 피곤하다고 시간이 없다고 하나님을 거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제발 내 삶에 사사건건 참견하지 마시라고 기도하고 잊지 않습니까? 내 경험과 내 생각으로 잘 해 왔다고, 이제는 더 이상 주님의 말씀이 내 삶의 기준도, 내 길을 인도하는 진리도 아니라고 말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교회는 어떻습니까? 우리교회가 처음부터 이렇게 성장된 큰 교회였습니까? 처음부터 이런 화려한 건물을 가진 교회였습니까? 1972년 11월 5일 8명의 하나님의 사람들이 모여 예배드렸습니다. 그 때만 해도 함께 모여 예배드릴 때는 감격이 있었습니다. 모두가 겸손한 마음들이 있었습니다. 그때에는 모일 수 있는 것만으로도 기쁨이었고 감사였습니다.
1979년 12월 30일 Lovington 교회를 구입하여 처음으로 우리의 예배당을 가지고 그 감격에 밤낮 철야기도를 해도 피곤치 않던 그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때는 순간순간마다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임을 눈으로 보고 기적적인 하나님의 역사를 맛보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교회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그 어느 누구도 도와주지 않고, 우리의 힘이 되어주지 않을 때, 낙심하고 절망하고 쓰러져 일어날 힘도 없을 때마다 우리 주님은 우리를 향해, 그리고 우리교회를 향해 말씀하셨습니다. 6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그 때에 내가 네 곁으로 지나가다가, 핏덩이로 버둥거리는 너를 보고, 핏덩이로 누워 있는 너에게, 제발 살아만 달라고 했다. (핏덩이로 누워 있는 너에게, 제발 살아만 달라고 했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살 수 있는 것은, 지금 우리 교회가 이렇게 유지되는 것은 우리의 잘남이나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고, 우리의 작은 움직임에도 시선을 놓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으셨기에 지금 우리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가진 것, 우리가 누리는 것, 우리의 위치, 우리의 명성, 누가 주신 것입니까? 네.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본문 10-12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10 수 놓은 옷을 네게 입혀 주었고, 물개 가죽신을 네게 신겨 주고, 모시로 네 몸을 감싸 주고, 비단으로 겉옷을 만들어 주었다.
11 내가 온갖 보물로 너를 장식하여, 두 팔에는 팔찌를 끼워 주고, 목에는 목걸이를 걸어 주고,
12 코에는 코걸이를 걸어 주고, 두 귀에는 귀고리를 달아 주고, 머리에는 화려한 면류관을 씌워 주었다.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10-12절 강해)
그것 뿐입니까? 13절의 말씀입니다.
이렇게 너는 금과 은으로 장식하고, 모시 옷과 비단 옷과 수 놓은 옷을 입었다. 또 너는, 고운 밀가루와 꿀과 기름으로 만든 음식을 먹어서, 아주 아름답게 되고, 마침내 왕비처럼 되었다.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마침내 뭐가 되었다고 말씀하십니까? “왕비”가 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비천하고 비천했던 우리를 존귀하고 존귀한 자로 만드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그 하나님을 잊고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 정도로 성장했으니, 더 이상 하나님은 필요없다고 말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의 생각대로, 우리의 경험으로, 우리가 가진 것으로 앞으로는 더 잘 살 수 있을 것이다라고 자고하고 교만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39-43절의 말씀을 함께 교독해 보겠습니다.
39 내가 너를 그들의 손에 넘겨 주면, 그들이 네 누각을 헐고, 네 높은 단을 무너뜨릴 것이며, 네 옷을 벗겨 버리고, 네 모든 장식품을 빼앗은 다음에, 너를 벌거벗겨 알몸으로 버려 둘 것이다.
40 그들은 너를 대항하여 한 무리를 끌고 와서 너를 돌로 치고, 칼로 찔러 죽일 것이다.
41 그들은 네 집을 불사르고, 많은 여인이 보는 앞에서 너에게 벌을 내릴 것이다. 내가 이렇게 네 음행을 끝장 내서, 네가 다시는 그들에게 선물을 줄 수 없게 하겠다.
42 그제야 너에 대한 내 분이 풀리고, 내 질투가 사그라지고, 마음이 평온해져서, 다시는 화를 내지 않게 될 것이다.
43
네가 어린 시절을 기억하지 않고, 이 모든 일로 내 분노를 터뜨려 놓았으니, 나도 네 행실대로 네게 그대로 갚을 것이니, 네가 다시는 역겨운 우상을 섬기는 일에다가 음행까지 더하는 일을 하지 못할 것이다.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어린 시절을 기억하지 못하는 우리를 하나님께서는 심판하시겠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다른 죄는 몰라도 교만은 반드시 벌하십니다. 개인의 교만이든, 교회의 교만이든 하나님은 교만은 그냥 놔두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교만은 믿는 자들의 패망의 지름길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사탄과 마귀가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사탄과 마귀는 어떻게 해서라도 우리를 교만케 하여 망하게 합니다.
마지막으로 요한계시록 3장 17절 말씀을 함께 찾아 보고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 초대 7교회 가운데 마지막 교회
(요한계시록 3장 17-19절 강해)
뭐라고 하십니까? 회개하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교만을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살던 우리 자신과 우리의 삶을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는 순간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최초 비참했던 모습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다 죽을 수밖에 없던 죄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잘남으로, 우리의 뛰어남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가 비참히 죽어가던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교만하면 안 됩니다. 우리 죄를 철저하게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 높아 지려고 했던 죄를, 하나님이 없이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했던 어리석음을, 우리의 경험과 생각이 하나님의 뜻을 앞지르며 일했던 우리의 열심을 우리는 철저하게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겸손하게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우리의 참된 신앙이 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