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랴 11:1-3(교만, 멸망의 지름길)
교만, 멸망의 지름길
(스가랴 11장 1-3절)
성경 마태복음 24장 32절과 33절 말씀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32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33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앞에 이른줄 알라
이 말씀은 마지막 때의 시대분별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예수님께서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통해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이 자라기 시작하면 여름이 온 것을 우리가 직감적으로 아는 것과 같이 말세에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서 주님의 재림이 임박했음을 깨달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마지막 때에 일어날 이 모든 일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이겠습니까? 성경 디모데후서 3장 1-5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1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2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3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4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사도 바울에 의하면 마지막 때가 이르면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마지막 때를 사는 성도들에게 무엇보다도 시대를 분별해서 주님의 오심을 준비하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심과 같이 시대를 분별해 보면 주님이 오실 때가 이제는 정말 거의 다 되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사도 베드로는 우리에게 경고까지 하고 있습니다.
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9a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벧전 5:8-9a)
마지막 때에는 정신 바짝차리고 믿음 생활하지 않으면 다 망한다고 경고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여러분에게 시대를 분별하는 영적 시각을 가지게 되시길 부탁드립니다.
사도바울이 디모데후서에서 말씀한 내용 가운데 말세의 신자들에게 나타나는 현상 중, 반복해서 말하고 있는 현상이 하나 있습니다. 그게 뭔지 아시겠습니까? 다시 한 번 읽어 드리겠습니다. 잘 들어 보시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1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2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3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4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무엇입니까? 자긍하고 교만하고 자고한다는 말입니다. 마지막 때 교회 안의 신자들에게 나타나는 현상 중에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이 있는데 ‘교만’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개인의 문제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말세 때에 교회의 모습을 이야기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왜 유난히 교만을 말세의 성도들의 경계의 대상으로 특별히 말씀하고 있을까요?
이 세상의 최초의 죄의 시작이 무엇이었는지 기억나십니까? 교만입니다. 인류 최초의 범죄가 어디서 일어났습니까? 에덴동산에서부터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일어난 최초의 범죄가 무엇입니까?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했던 교만이었습니다.
(창세기 3장 1-5절 설명)
아담과 하와의 범죄이후 인류는 끊임없는 교만에 빠져서 하나님께 대한 도전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교만의 대명사로 자리잡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창세기 11장에 등장하는 바벨이라는 단어와 그 단어와 연관된 모든 사건들이 교만으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창세기 11장에 나오는 바벨탑 사건 역시 교만으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내용입니다. 인간들이 탑을 쌓은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탑을 높이 쌓아서 하늘에 닿게 하고 자신들의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라는 것이었습니다. 뭐라고 합니까? 자신들의 이름을 내자고 합니다. 더 이상 하나님이 필요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교만이었습니다.
바벨론 느부갓네살의 멸망의 원인도 무엇이었습니까? 교만이었습니다. 어느 날 왕궁 옥상을 거닐면서 자신의 나라의 찬란함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화려함과 차란함을 보면서 이야기합니다.
‘다니엘 4장 29-37절 말씀을 보기’
(지금까지도 역사상 가장 찬란한 문명과 강성한 나라는 바벨론 제국이었음을 역사학자들이 말한다. 다니엘의 환상을 보십시오. 바벨론 제국을 금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느부갓네살 왕도 자신의 제국의 건설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잊고 자신의 능력과 힘으로 세워졌다고 생각하는 순간, 망한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8장에 가면 바벨론 음녀의 멸망도 교만 때문이었습니다.
7 그가 어떻게 자기를 영화롭게 하였으며 사치하였든지 그만큼 고난과 애통으로 갚아 주라 그가 마음에 말하기를 나는 여황으로 앉은 자요 과부가 아니라 결단코 애통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8 그러므로 하루 동안에 그 재앙들이 이르리니 곧 사망과 애통과 흉년이라 그가 또한 불에 살라지리니 그를 심판하신 주 하나님은 강하신 자이심이니라 (계 18:7-8)
말세가 되면 교만으로 망하게 되는 신자들이 많이 나오게 됩니다. 교만으로 넘어지는 목회자, 교만으로 넘어지는 교회 직분자들, 교만으로 넘어지는 교회가 나온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다른 죄들 보다 이 교만을 철저하게 다루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교만은 하나님을 직접 대면하여 범죄하게 하는 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탄과 마귀는 신자들로 하여금, 심지어 교회로 하여금 교만에 빠지도록 온갖 노력을 다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 이유가 두가지가 있습니다. 첫번째 이유는 교만은 인간이 걸려들기 가장 쉬운 죄이기 때문입니다. 두번째는 교만은 자기 자신도 알아 차리지 못하는 가운데 교만에 빠져 망하게 합니다.
사탄은 절대 혼자 죽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미 사망선고를 받은 존재이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들이 심판받을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한 영혼이라도 더 지옥으로 끌고 가기 위해 발악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 영혼이라도 더 지옥으로 끌고 가기 위해 인간들의 가장 약점인 교만을 통해 망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죄도 다루시지만, 교만한 죄는 특별히 다루신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기억나십니까? 다윗이 죄를 몇 번 짓습니까? 네. 수도없이 지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크게 몇 번을 기록하고 있습니까? 두 번입니다. 그 첫 번째가 우리야의 아내를 취하고 우리야를 의도적으로 죽인 죄입니다. 그런데 그 죄에 대한 결과는 어느 정도였습니까? 자신과 밧세바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하나만 죽는 것으로 끝납니다.
그런데 다윗이 말년에 또 한 번 큰 죄를 짓습니다. 무엇입니까? 인구조사입니다. 성경에 의하면 이 인구조사가 다윗의 교만에 의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의 나라가 얼마나 강성한지 한번 보고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그 일을 감행합니다. 사무엘하 24장 2-4절의 말씀에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2 왕이 이에 그 곁에 있는 군대 장관 요압에게 이르되 너는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로 다니며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인구를 조사하여 그 도수를 내게 알게 하라
3 요압이 왕께 고하되 이 백성은 얼마든지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백배나 더하게 하사 내 주 왕의 눈으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그런데 내 주 왕은 어찌하여 이런 일을 기뻐하시나이까 하되
4 왕의 명령이 요압과 군대장관들을 재촉한지라 요압과 장관들이 이스라엘 인구를 조사하려고 왕의 앞에서 물러나서
결국 이 일로 인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선지자 갓이 3가지 옵션을 줍니다. 1. 칠년 기근, 2. 3달동안 쫓겨 다니는 것, 3. 삼일동안 온역이 있는 것)
이스라엘 백성 칠만명이 죽었습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교만은 나 혼자만 죽게 만드는 죄가 아니라 모두가 함께 망하게 만드는 죄입니다. 나 한 사람의 교만이 우리 모두를 멸망의 길로 빠뜨리는 지름길이 되는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늘 말씀의 서두가 좀 길었습니다만, 오늘 본문이 말씀하시는 것도 교만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리고 오늘 스가랴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교만에 대해서는 반드시 심판하시겠다고 선포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마음이 많이 무거웠습니다. 이 말씀은 저에게 하시는 말씀이기도 하지만, 우리 가운데도 들을 자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새벽마다 묵상하고 있는 스가랴의 말씀은 9장부터 14장까지 ‘목자’들에게 말씀하시는 예언의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1절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레바논아 네 문을 열고 불이 네 백향목을 사르게 하라
무슨 말씀이십니까? 하나님께서 지금 레바논에 대한 심판의 말씀을 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여러분도 아시는 바와 같이 레바논은 이스라엘 북쪽 경계선과 맞닿아 있는 지역입니다. 그리고 이곳은 백향목으로 유명한 지역입니다. 백향목은 예로부터 한 나라의 왕궁이나 신전 같은 중요한 건물을 짓는 자재로 널리 사용했던 목재였습니다. 그래서 레바논 사람들은 옛날부터 자신들 땅에서 나는 백향목에 대한 상당한 자긍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러한 레바논을 향하여 문을 열라고 명령하십니다. 왜 문을 열라고 하십니까? 레바논 땅의 모든 백향목을 불사라 버리시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원문의 표현에 의하면 “불이 너의 백향목을 삼키게 하라” 라는 뜻입니다. 즉, 백향목을 완전히 불태워 그 흔적조차 없애 버리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말씀하십니까? 백향목만 믿고 스스로 자기 교만과 자고에 빠진 레바논을 하나님께서 불로 심판하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럼 도대체 레바논에게 있어서 백향목이 어떠한 존재였기에 레바논은 백향목만 믿고 교만에 빠진 것인지 살펴 보아야 합니다.
2-3절의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2 너 잣나무여 곡할찌어다 백향목이 넘어졌고 아름다운 나무가 훼멸되었도다 바산의 상수리나무여 곡할찌어다 무성한 삼림이 엎드러졌도다
3 목자의 곡하는 소리가 남이여 그 영화로운 것이 훼멸되었음이로다 어린 사자의 부르짖는 소리가 남이여 이는 요단의 자랑이 황무하였음이로다
뭐라고 그럽니까?
너 잣나무여 곡할찌어다 백향목이 넘어졌고 아름다운 나무(아름다움/외모/외형)가 훼멸되었도다 바산의 상수리나무여 곡할찌어다 무성한 삼림(풍성함/풍요)이 엎드러졌도다
3절 말씀도 다시 보겠습니다.
목자의 곡하는 소리가 남이여 그 영화로운 것(화려함)이 훼멸되었음이로다 어린 사자의 부르짖는 소리가 남이여 이는 요단의 자랑(자기자랑)이 황무하였음이로다
이게 무슨 의미입니까? 레바논은 자신들이 가진 백향목의 아름답고 화려함, 휘황찬란한 웅장함, 위엄있는 기풍만 믿고 교만에 빠져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자신들이 자랑하는 그 모든 것들을 모두 불태워 황폐하게 만드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저는 지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이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가정에, 우리교회에 주신 복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받은 이 복이 어디서 왔는지를 잊어 버리는 순간 다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서두에서도 말씀을 드렸지만 느부갓네살이 7년 동안 바벨론 왕궁에서 쫓겨난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자신의 나라를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세웠다고 자고하는 순간, 하나님은 그의 총명을 빼앗아 가십니다.
우리 개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내가 누리는 자리, 지금 내가 있는 이 공간은 내가 잘나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받은 직분은 내가 능력이 있어서, 내게 조금이라도 잘남이 있어서, 남들보다 뛰어나서 받는 직분과 역할이 아닙니다.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나서, 경험이 많아서, 능력이 있어서 올라온 자리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자리에 내가 필요하시닌까, 우리에게 능력주셔서, 우리에게 재물주셔서, 우리에게 은사주셔서 세워 주신 것입니다.
저 역시도 우리교회에서 사역하는 것이 제 능력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처음 제가 우리 교회 올때만 해도 그런 잘못된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알겠습니다. 그게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곳에 서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언젠가 저는 다시 또 다른 곳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저만 그렇습니까? 우리 모두는 이곳에 영원토록 머물지 못합니다. 언젠가 주님이 부르시면 우리는 떠나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떠났던 것처럼 떠나야만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이땅에서 순례자로 사는 자들의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자고하지 마십시오. 교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를 쓰실 때는 하나님의 영광을 들어내라고 주신 것이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라고 주신 능력과 은사입니다. 사나 죽으나 우리가 들어내야 하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나 죽으나 우리가 자랑해야 하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믿으시면 아멘!
철저하게 자신을 낮추시기 바랍니다. 자신을 낮추면 하나님이 높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14장에서 말씀하셨습니다.
7 청함을 받은 사람들의 상좌 택함을 보시고 저희에게 비유로 말씀하여 가라사대
8 네가 누구에게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때에 상좌에 앉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보다 더 높은 사람이 청함을 받은 경우에
9 너와 저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이 사람에게 자리를 내어 주라 하리니 그 때에 네가 부끄러워 말석으로 가게 되리라
10 청함을 받았을 때에 차라리 가서 말석에 앉으라 그러면 너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벗이여 올라 앉으라 하리니 그 때에야 함께 앉은 모든 사람 앞에 영광이 있으리라
11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베드로 사도 역시 말씀하십니다.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5:5b)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6)
결론을 맺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허락하신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풍성함도 있습니다. 영화로운 복도 있습니다. 많은 자랑거리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레바논의 백향목을 지으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광 돌리는 것이 아니라 그 백향목 자체를 찬양하고 바라보고 살았던 변질된 모습들이 우리 가운데 있다면 주님은 오늘 우리 가운데에도 동일한 말씀, “네 문을 열고 불이 네 백향목을 사르게 하라” 말씀하실지 모릅니다. 바라기는 오늘 기도하는 가운데 우리의 마음과 삶을 점검해 보며 나의 나 된 것이, 그러한 것들로 인함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임을 간절히 고백하게 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