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10:1-10(솔로몬 왕의 지혜와 재산)
솔로몬 왕의 지혜와 재산
(열왕기상 10장 1-10절)
열왕기상 10장의 내용은 두 부분으로 나눠서 살펴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 1절부터 13절까지는 솔로몬 왕의 지혜가 어느 정도였는지에 대해 스바여왕의 이야기를 통해 이야기해 주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14절부터 마지막 29절까지, 솔로몬이 누린 부귀영화가 어느 정도인지를 실질적으로 보여 주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오늘은 전반부, 스바 여왕의 이야기를 가지고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먼저 1절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어 보도로 하겠습니다.
스바 여왕이, 주님의 이름 때문에 유명해진 솔로몬의 명성을 듣고서, 여러 가지 어려운 질문으로 시험해 보려고, 솔로몬을 찾아왔다.
1절 말씀에 등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입니까? 스바 여왕입니다. 솔로몬이라고 하면 함께 떠오르는 사람 중에 하나가 바로 스바 여왕일 것입니다. 오늘은 이 스바 여왕이 누구인지 먼저 알아 보면서 오늘 말씀을 시작하고자 합니다. 여러분은 ‘스바 여왕’이 누구라고 기억하고 있습니까? 마태복음 12:41-42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41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어니와 요나보다 더 큰이가 여기 있으며
42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어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이가 여기 있느니라
지금 이게 무슨 말씀인지 기억해 보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마태복음 12장 배경 설명)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 남방 여왕이 바로 스바여왕을 말합니다. 또한 성경 사도행전 8장 26-40절에 나오는 빌립(사도 빌립이 아니라, 집사 빌립임)과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내시 이름이 간다게가 아니라, 여왕의 이름이 간다게임) 라는 인물의 모든 국고를 맡은 내시와의 이야기에 나오는 에티오피아가 바로 이 스바 여왕이 다스렸던 나라입니다. 에티오피아는 이 스바 여왕 때부터 예수님께서 부활승천하실 때까지 매년 예루살렘으로 여행을 하는 공식적인 방문이 있게 되지 않았을까라고 추측도 해 봅니다.
더욱이 이 에티오피아는 이스라엘 민족과는 각별한 관계에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알고 계시는 대로 모세가 취한 여인 중에 구스 여인있습니다. 이 구스 여인이 바로 에티오피아 출신의 여인입니다. 모세시대 당시 구스지역이 현재의 에티오피아 지역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볼 때, 에티오피아는 이스라엘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여하튼 지금 오늘 본문에서 스바 여왕이 에티오피아에서 예루살렘까지 무엇 때문에 그 긴 여행을 하면서 솔로몬을 찾아 온 것입니까? 바로 솔로몬의 지혜를 직접 듣고자 찾아 온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질문하나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지혜의 말씀을 듣고자 이런 수고를 해 본 경험이 있으십니까? 오늘 스바 여왕처럼 참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이런 애를 써 본 적이 있느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고사성어 중에 ‘맹모지삼천지교’ 라는 말이 있습니다. 무슨 내용인지 다 아시는 내용일 것입니다. 맹자의 어머니가 성인 ‘맹자’를 만들어 낸 일화를 바탕으로 하는 내용입니다.
공동묘지-시장-서당:
아이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우리는 맹자의 어머니 이상으로 애를 씁니다. 당연히 부모의 심정이기 때문에 그럴 것입니다. 그뿐입니까? 우리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도 우리의 노력은 가히 다른 사람의 추격을 용납하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는 애를 씁니다.
그런데 우리는 정작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혜를 얻고자 애를 쓰냐라는 것입니다. 교회생활을 하면서 교회에 대한 열정은 누구보다도 열심을 가지고 있지만 정작 중요한 것이 하나님 말씀에 대한 갈증을 가지고 진정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자 열심을 내고 있는지 말입니다.
제가 목회를 하면서 늘 고민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 이런 것입니다. 지금까지 만나봤던 분들 가운데 교회생활에 대해서는 열심이 특심이신 분들이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자 특심이신 분들은 많이 보지 못한 것입니다.
성경 아모스 8장 11-13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11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찌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12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에서 동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달려 왕래하되 얻지 못하리니
13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피곤하리라
성경은 말세가 되면 교인들에게 나타나는 현상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 현상이 어떤 현상이냐하면 사람들이 굶주림과 갈급함을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람들은 교회 바깥의 사람들, 즉 믿지 않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불신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갈급해 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세에 사람들이 갈급함을 느끼게 될 때, 이것은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말씀입니다. 바로 뭔가 모를 교회 안에 영적 갈급함이 생겨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갈급함이 양식이 없어서 느끼는 갈급함이 아니라, 물이 없어서 느끼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해서 느끼는 기갈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보다 더 큰 문제는 말세 때 이 갈급함이 우리에게 있어야 하는데, 정작 우리는 이 말씀의 갈급함, 기갈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말씀에 대한 갈급함이 지금 있으십니까? 오늘 이 자리로 나오시면서 말씀에 대한 갈급함을 가지고 그 말씀을 듣겠다는 심정으로 지금 이 자리에 나오셨습니까?
오늘 솔로몬을 찾은 스바 여왕은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는 이방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갈급함과 열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말씀에 대한 열정이 그녀로 하여금 에티오피아에서 예루살렘까지 그 긴 거리를 여행하게 한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말씀에 대한 열정이 회복되어지길 원합니다. 적어도 하루 한 장 묵상하는 바이블타임에 목숨 한 번 걸어 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묵상한 말씀을 가지고 하루를 스트러글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말씀대로 살고자 발버둥쳐 봤으면 좋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구체적으로 내 삶에 적용하며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살아 봤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본문 1절의 말씀에 중요한 말씀이 있습니다. 1절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스바 여왕이, 주님의 이름 때문에 유명해진 솔로몬의 명성을 듣고서, 여러 가지 어려운 질문으로 시험해 보려고, 솔로몬을 찾아왔다.
솔로몬이 명성을 얻게 된 근원이 무엇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까? 네, 그렇죠. 무엇 때문이라구요? “주님의 이름 때문에 유명해 졌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만큼 잘 먹고 잘 살게 된 것, 다른 사람들에게 이 만큼 인정받고 있는 것이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나의 잘남입니까? 아니면 내가 가진 지식과 능력 때문입니까? 오늘 성경은 무엇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따라 하겠습니다. “주님의 이름 때문에”
“주님의 이름 때문에 유명해 졌다”고 말씀합니다. 내 능력, 내 힘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의 모습은 바로 내 능력과 내 힘으로 된 것이 아니라, 우리 주님께서 이 자리까지 인도하셨습니다. 내 능력과 내 힘이라고 생각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우리에게는 본성적으로 악한 마음이 있습니다. 어떤 악한 마음이냐하면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려는 아주 못된 마음입니다.
그렇다 보니 조금만 살만하면 잊습니다. 뭘 잊습니까? 우리가 가진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내가 가진 능력과 힘으로 이룬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신명기 8장 18절은 이런 우리를 경계하기 위해서 말씀하십니다. 다같이 신명기 8장을 찾아 보겠습니다.
(신명기 8장 읽으면서 해설)
그래서 스바 여왕은 솔로몬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고 누구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까? 오늘 바이블타임 열왕기상 10장 9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임금님의 주 하나님께 찬양을 돌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임금님을 좋아하셔서, 임금님을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좌에 앉히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영원히 사랑하셔서, 임금님을 왕으로 삼으시고, 공평과 정의로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뭐라고 합니까? “임금님의 주 하나님께 찬양을 돌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 서두에서 읽었던 예수님의 말씀, 말세 때, 심판 날이 오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자 하는 열정도 식고, 하나님의 지혜를 찾고자 애쓰지도 않고, 교회생활을 한다고 하면서도 정작 중요한 것은 갈급하게 찾지 않고, 본질이 아닌 비본질인 것에 목숨을 걸고 있는 우리를 보시며 주님은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어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이가 여기 있느니라”
마지막 때는 말씀을 들으려 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를 구원케 믿음은 어디에서 오기 때문입니까? 따라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로마서 10:17)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 1장 3절에서도 똑같이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이것도 한 번 따라 읽어 보겠습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예언의 말씀을 듣는 자들이 복되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때가 가까이 왔다고 말입니다. 지금 비본질적인 것에 목숨걸며 살 때가 아니라, 본질을 찾아 무단히 애써야 한다고 말입니다. 여러분의 관심은 현재 어디에 가 있습니까? 내가 지금 바른 신앙과 신학, 참된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과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까? 내 영혼이 가고 있는 방향이 제대로 가고 있는지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있느냐는 말입니다.
여러분에게 마지막으로 질문하나 드리고 말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여러분! 솔로몬이 솔로몬 왕이 될 수 있게 했던 기도가운데, 솔로몬 왕이 구한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지혜였습니까? 지혜로운 마음이었습니까?
바이블타임 45쪽 열왕기상 3장 9절을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종에게 지혜로운 마음을 주셔서, 주님의 백성을 재판하고,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많은 주님의 백성을 누가 재판할 수 있겠습니까?"
자, 솔로몬이 하나님께 구한 것은 무엇입니까? 지혜가 아니라 멉니까? ‘지혜로운 마음’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지혜로운 마음이 히브리성경 원문에는 무엇이라고 적혀 있는지 아십니까?
“듣는 마음”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즉, 원래 ‘지혜로운 마음’이라고 번역된 말의 뜻은 ‘듣는 마음’ 즉, 솔로몬이 기도로 구한 것은 ‘지혜’를 달라고 기도한 것이 아니라, ‘듣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참 놀라운 말씀 아닙니까? 지금까지 우리는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기도를 기뻐하신 이유가 ‘지혜’를 달라고 해서 그렇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닙니다. 사실은 ‘지혜’는 하나님께서 그냥 덤으로 주신 것입니다.
솔로몬이 구한 것은 지혜가 아니라 무엇이었다구요? ‘듣는 마음’이었습니다. 듣는 마음을 저와 여러분은 잊지 말아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물론,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중요한 것이 지혜, 지식, 총명, 재물 등등 일 것입니다. 이것 부정할 마음없습니다. 저에게도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들 보다 우선적으로 우리가 기도하고 구해야 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듣는 마음”입니다. 이 듣는 마음이 나를 살리고 다른 사람도 살리고 우리 모두를 살리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오늘 열왕기상 10장을 끝으로 성군 솔로몬의 모습은 이제 드디어 폭군 솔로몬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 이유가 바로 그에게 “듣는 마음”이 사라졌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경은 사무엘상 15장 22-23절에서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22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23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낫다’라고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성경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듣는 것과 듣는 마음이 우리 신앙의 본질이자 가장 기본이라고 말입니다.
듣는 마음이 우리를 복되게 하고 우리를 살찌게 하고 우리를 형통케 하는 비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작은 신음을 들으시고 응답하시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도 우리를 들으시는데, 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데 최선의 노력을 하지 않습니까? 왜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까?
들어야 삽니다. 들어야 나도 살고 남도 살립니다. 무엇을 들어야 합니까? 먼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내 주위 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일 수 있어야 합니다. 내 말만 해서는 안 됩니다. 나만 최고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다른 사람이 옳을 수 있다는 생각도 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녀들 다 키워 보셨을 것입니다. 어린 자녀들을 키울 때 어떻게 하셨습니까? 그 아이의 작은 얘기도, 말도 안 되는 얘기도 들어 주셨지 않습니까? 그런데 언제부터 듣지 않기 시작했습니까? 우리는 우리 자녀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듣지 않은 적이 있었는지 말입니다. 다 들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왜 유독 하나님의 음성은 듣지 않으십니까? 왜 내 주위의 사람들의 소리에는 귀 기울이지 않습니까? 오늘 저도 왜 이런 말씀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주님이 이렇게 인도해 주셨습니다. 들을 귀 있는 자가 분명 있다고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무엇을 들어야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오늘 분명 들어야 합니다.
들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혹여 오늘 이 자리에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고,
그 이야기대로 듣고 행해야 하는 것이 있다면 순종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이
모든 것을 합력하야 선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